정통언론과 사이비언론(펌)
- 작성일
- 2011.10.20 21:13
- 등록자
- 김OO
- 조회수
- 179
정통언론과 사이비언론
김현철(전 언론인)
언론을 흔히 제 4 권력이라고들 말한다.
정부의 입법, 사법, 행정에 이어 언론을 그 다음 권력으로 인정한다는 뜻은, 언론은 정치권력의 독단적 행위를 시시비비주의(是是非非主義, 중립적인 입장에서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가리는 주의)에 입각해서 견제비판하고 ‘민주주의의 보루(堡壘 = Bastion)'로써 '사회 정화'라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이 이러한 사회적 공기(公器 = 사회 일반이 공동으로 쓰는 물건 또는 기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다할 때 그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지 기자의 삿적 감정에 따라 언론을 흉기로 둔갑시킨다면 이는 '사이비신문' 또는 '폭력신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이비(似而非)라는 말의 뜻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겉보기에는 진짜와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르다’는 뜻으로, 조선 중기 때 침굉(枕肱) 스님이 가사집인 '침굉집(集)’에서 ‘사이비 승려’에 대한 질책과 승려 본연의 사명인 중생 제도의 염원을 읊은 데서 비롯된 말이다.
시(是=옳을 시), 비(非=아닐 비) 즉 ‘시시비비’라는 뜻 역시 '옳은 것은 옳다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한다는 뜻인데 만일 기자가 자기감정대로 '시를 비라하고 비를 시라 한다'면 이미 그 기자는 기자의 자격도 없고 기자 흉내를 내더라도 어디까지나 '사이비 기자'일 뿐이다.
독자 중에는 언론이 올바로 가는지 아닌지를 알기가 쉽지 않은 분들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사이비 언론'이 장기간 독버섯처럼 활개를 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도 사이비 신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서 사이비 신문이 오래 가지 못하게 광고를 안 주는 등 냉대함으로써 장기간 존립이 어렵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 세계 언론계의 편집자들이 공통으로 지켜나가고 있는 절대 준수사항 다섯 가지가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사실과 다른 오보(False Report)는 없는가? 2 명예훼손죄(Libel and Slander)는 구성되지 않는가? 3 뉴스 가치 판단(News Value Judgment)에 틀림이 없는가? 4 오타(Typo)는 없는가? 5 문법(Grammar), 구두점(Punctuation Mark), 맞춤법(Spelling) 그리고 사용된 용어에 오류는 없는가?
필자가 알고 있는 지난 3년간만 돌아보자.
자기 신문사에 불쾌한 사건을 들춰낸다 해서 정상적인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 군의원을 사회에서 매장시킬 목적으로 기사 가치도 없는 내용을, 그것도 본인도 아닌 남편의 일을, 연 3주 동안이나, 1면 머리기사로, 침소봉대(針小棒大 = 바늘을 몽둥이나 된 듯 과장) 해서, 대서특필(大書特筆)한 사건 하나만 보더라도 이미 언론을 아는 정의파 인사들은 이 신문이 ‘정통언론이 아닌 폭력 내지 사이비언론 ’임을 확인했다.
이 때 신문사의 운영진인 이사진이 즉시에 편집 당사자 해임 문제를 거론 했어야 옳았지만 그 좋은 기회를 놓침으로써 이 신문의 사이비 내지 폭력 행위가 계속되도록 방치해 왔음은 ‘감독권’을 소홀히 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 폭력신문의 경우 전 세계의 편집자가 지키고 있는 위 다섯 가지 준수사항 중 1항, 2항, 3항 등 하나도 아닌 무려 세 가지를 범하면서 정의파 군의원 타도에 용맹(?)을 떨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나머지 둘도 다 걸리지만 강진처럼 작은 언론사들의 경우 자주 범하는 내용이라 그 부분은 그냥 덮어 두기로 한다.
어찌 이것이 군의원 개인의 피해에 그치겠는가?
피해자가 자기 돈 벌자고 의정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 바로 군민들을 대신해서 군민의 혈세가 제대로 쓰였나를 감시하는 숭고한 임무를 수행한 사건이었으니, 다시 말해서 군민 전체의 이해에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이었으니 결과적으로 군민 전체가 피해를 입은, 즉 ‘공익을 해치는 폭력 기사’였다는 데에 심각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의정활동을 방해하는 반사회적 신문 기사를 놓고도 직접 당사자들인 당시의 동료 군의원들은, 이사진까지도 견제하지 못해서 너무 커버린 이 폭력 신문이 두려워서 공동으로 법적 대응을 하기는커녕 반박 성명조차 못 내는 비굴성만 보여 줬으니 어느 의원이 이 ‘폭력 신문’이 무서워 올바른 의정활동을 할 수 있겠으며 어느 강진군민이 이 신문을 바로 잡자고 소신있는 발언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겠는가?
악을 향한 이사진 및 군의회의 침묵은 이렇게 전체 강진사회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워 왔을 뿐이다.
대부분 독자들은 ‘신문에 났으니 그게 사실일 테지’하고 믿는다.
이를 두고 언론계에서는 ‘인쇄의 마성(魔性)’이라 칭한다.
신문이 침소봉대해서 과장보도를 해도, 거짓말을 써도, 나아가서는 폭력을 휘둘러도 독자들은 ‘마귀에 홀린 듯’ 인쇄가 된 내용이라면 무조건 사실로 받아들임을 빗댄 말이다.
이렇게 독자들로부터 비판을 당하는 사이비 기자나 그의 최측근 인사들은 후안무치(낯이 두꺼워 부끄러움도 모르는)하게도 ‘왜 남의 회사 일에 간섭이냐?’고 할지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그건 무지한데서 나오는 말이다.
개인회사지만 이 언론사는 사회의 공기로서의 본연의 자세를 잃고 이미 자기네 회사 밖의 무고한 인물에 큰 상처를 주었으니 이런 경우 독자들의 간섭은 천만번 당연한 것이다.
올바른 의정활동으로 군민들로부터 큰 상을 타기는커녕, 사이비 폭력신문에 이토록 심하게 당하면서도 앞으로의 또 다른 폭력이 두려워 고소도 못한 장본인의 심경을 헤아려 볼 줄 안다면, 강진군민들 및 당시의 군의원들 특히 신문사 이사진 여러분은 이 분에게 크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지난 선거 때 현명한 강진군민들은 이 분에게 대승을 안겨주면서 빚을 갚았을 것이고 동시에 깡패 짓을 한 신문은 이 분을 '매장시키려고 노력한 보람'도 없이 그 기사의 역효과로 이 분이 군의회 재진출에 성공함으로써 크게 실망하고 당황했을 것이다.
더구나 놀라운 사실은 중앙의 신문 방송을 비롯해 모든 언론이 강진군의 정치적인 과잉 수사를 나무라고 있는 터에 누구보다도 강진을 아끼고 사랑해야 할 이 신문만이 ‘뒤에 숨어 있는 정치인’의 앵무새나 된 듯, 아무런 근거 제시도 없이 과잉수사가 옳은 것처럼 지자체장을 성토했을 뿐 아니라 마치 ‘ 이웃 군 직원들은 열심히 일을 잘 하는데 강진군 직원들은 일을 안 하고 빈둥대’는 양 대서특필해서 독자들을 오도(誤導 =잘 못 인도한)한 죄를 지었다.
당시 과잉수사로 군청 행정이 마비되어 직원들이 일을 할 수 없었음을 군민 및 군의회까지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의식수준이 있는 분들은 편집자의 IQ를 의심할만한 이 어처구니없는 기사를 보고 허탈한 웃음을 띠었을 뿐이다.
IQ가 정상이었다면 독자들의 눈치를 봐서라도 이런 기사를 쓸 수는 없었을 것 아닌가.
위의 군의원 관련 기사나 이 기사를 볼 때 항상 올바른 이성 속에서 살아야 할 기자가 지나친 복수심에 사로잡힐 경우 어떤 결과를 낳는지 잘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이 신문이 진실로 강진군민을 위한 정통지였다면, 일단 평소 자기 신문을 도와주지 않는(그 원인도 이 신문에 있었음을 스스로가 더 잘 알 것이다) 지자체장이 죽도록 밉더라도, 이 경우만은 좀 더 현명해져서 중앙지들 보다 먼저 ‘수사가 지나치다’는 뜻을 분명히 했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지역신문의 역할인 것이다.
모든 ‘언론이라는 차’들이 정상적으로 도로 상에서 달리고 있는데 오직 이 차만 길도 없는 산등성이로 달린다면 사람들은 이 차 운전자를 정신이상자로 보지 않겠는가.
무조건 신문이 비판기사를 쓰면, ‘공익을 해치는 깡패와 다름없는 기사’ 마저도 ‘언론의 감시비판기능’을 다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일부 독자들은 이번 기회에 그것이 올바른 언론의 자세인지? 아니면 언론이 정신 나간 짓을 하고 있는지?
다시 말해서 운전자가 차를 제대로 운전하는지, 산으로 끌고 가는 지를 가릴 수 있는 안목을 길러나가야 한다.
공익성(Public interests)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폭력기자가 강진군민만으로도 모자라 이웃 군에 까지 악영향을 끼쳐 독자들에게 피해를 주겠다고 한다면 이를 못하도록 하는 것이 정의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의 당연한 언행이 아닌가!
알권리를 지닌 독자들에게 잘 못 된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비 언론인 때문에 순진한 독자들의 판단이 흐려진다면 이 이상 더 큰 죄가 또 있겠는가?
이를 방관하는 자 공범이 될 수밖에 없는 법이다.
따라서 어느 사회나 사이비언론을 견제할 '정통신문'의 역할은 너무도 중요한 것이며 군민 대부분이 몰라서 행동을 안 한다면 언론을 아는 사람들만이라도 앞장서서 고향 강진의 올바른 발전을 유도해 나가야 한다.
정의를 세우는데 언제 다중이 가담한 적이 있던가?
비굴한 다중은 눈치를 볼 때 용감한 정의파 인사들 몇 몇이 자신들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거사를 성공시켜 전체 사회에 행복을 가져 온 사례가 반복되는 것이 인류의 역사다.
재야시절 김대중 선생은 반독재 투쟁에서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국민의 귀가 닳도록 외쳤음은 우리 모두 다 아는 바이다.
이번을 계기로, 지난 날 강진의 평화를 망가트려 온 폭력 신문의 흉기에 찔려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적지 않은 분들이 강진에서 더는 양산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부터 바라는 마음 간절하며 아울러 이 글이 이미 상처를 입은 분들의 아픔을 단 10% 만이라도 어루만져 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