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시대
기원전 30,000~20,000년 신북유적에서 나뭇잎모양찌르개 등 3만여 점 발견
신석기시대
기원전 6,000년 오복리 바위그늘 유적 발굴
청동기시대
기원전 1,500년 보성강 상류·탐진강·남해안 지역에 2,200여 기의 고인돌 분포
마한
기원전후 장흥 지역과 중국 간의 교역을 알려주는 신나라(A.D. 8~23) 때 화폐인 대포황천(大布黃千) 발견
삼국시대
백제 사비기(538~660년) 지방행정제도 개편, 장흥 지역에 오차현(烏次縣)·고마미지현(古馬彌知縣)·마사량현(馬斯良縣)·계천현(季川縣) 설치
통일신라시대
- 750년경 원표(元表) 보림사 처음 세움, 이후 9세기 중반 체징(體澄) 보림사 중창(가지산파迦智山派 개창)
- 경덕왕 16년(757년) 오차현은 오아현(烏兒縣), 고마미지현은 마읍현(馬邑縣)으로, 계천현은 계수현(季水縣), 마사량현은 대로현(代勞縣)으로 명칭 변경
고려시대
- 예종 4년(1109년) 인종의 비 공예태후(1109~1183) 출생. 이후 공예태후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정안현(定安縣)이 장흥부(長興府)로 승격
- 원종 6년(1265년) 회주목(悔州牧)으로 승격
- 원종 15년(1274년) 여몽연합군의 일본 정벌 때 천관산 부근의 목재로 전함을 제작
- 충선왕 2년(1310년) 장흥부로 강등
- 우왕 5년(1379년) 왜구의 침입을 피해 치소를 철야현으로 옮김. 이후 공양왕 1년(1389년) 보성군으로 주민 이동
조선시대
- 조선 태조 원년(1392년) 수령현(遂寧縣)의 중령산(中寧山)에 성을 쌓고 장흥부의 치소로 정함.
- 태종 13년(1413년)에 장흥도호부(長興都護府)가 됨.
- 태종 14년(1414년) 수령현의 옛터에 옮겨서 성을 쌓았다.
- 세조 3년(1457년)에 장흥진(長興鎭)을 두고 보성(寶城)·강진(康津)·해남(海南)·진도(珍島)를 관할.
- 성종 21년(1490년) 회령진성을 쌓음
- 선조 32년(1599년)에 병영(兵營)을 강진에서 장흥으로 옮겨 설치함. 이후 선조 37년(1604년)에 다시 강진으로 옮김.
- 광해군 2년(1610년) 예양서원(汭陽書院) 창건 이후, 강성서원·연곡서원 등 잇달아 세워짐
- 고종 31년(1894년) 동학농민군, 장흥 석대들에서 패배(동학농민혁명의 마지막 격전지)
- 고종 32년(1895년) 나주부(羅州府) 장흥군(長興郡)으로 명칭 변경.
- 고종 33년(1896년) 전라남도 장흥군으로 변경. 현재 금일읍·금당면·생일면·고금면·신지면·약산면·청산면을 완도군에 이관.
근대이후
- 1914년에 천포, 회령, 웅치 등 3개면이 보성군에 편입 11개의 행정구역으로 개편
- 1936.11.01 면통폐합으로 부동면을 장흥면으로 남하, 남상 양면을 폐합, 용산면으로, 남하면의 하발, 고마, 죽청과 고읍면을 폐합 관산면으로 개칭 9개면이 됨.
- 1940.11.01 장흥면이 장흥읍으로 승격 1읍 8개면 275개리로 지속
- 1973.07.01 행정구역 조정으로 장동면 광평리가 장평면으로 조정
- 1980.01.01 장흥읍 건산3구, 예양리, 대덕면 회진리가 분할 279개리가 됨
- 1980.12.01 관산면과 대덕면이 관산읍과 대덕읍으로 승격 3읍 6면이 됨
- 1982.01.01 장흥읍 건산 4구, 원도리, 대덕읍 회진리, 안양면 수문리가 분할 3읍 6면 283개리가 됨
- 1985.10.19 대덕읍 회진출장소 설치
- 1986.04.10 대덕읍에서 회진면이 분면 3읍 7개면이 됨
- 1986.07.15 관산읍 옥당, 용산면 인암, 풍길리, 안양면 해창 3구, 장동면 북교1구, 장평면 용강2구, 봉림리, 우산리, 청용리, 회진면 진목2구가 분할 3읍 7개면 293개리의 행정구역으로 개편됨.
- 2001. 12. 31 유치면 원등리가 신설되어 3읍 7개면 294개리의 행정 구역으로 개편됨
- 2002. 9. 16 장흥읍 행원2구가 분할되어 3읍 7개면 295개리의 행정 구역으로 개편됨. 현재 3읍 7개면 281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