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파의 사상과 검증,,,충격적이다,
- 작성일
- 2004.10.26 09:16
- 등록자
- 채경근
- 조회수
- 1299
목 차
Ⅰ. 개 요
1) 문제의 제기
2) 비밀교시와 당 정책
Ⅱ. 혁명전통계승 전국혁명
1) 후계체제확립
2) 전국 혁명
3) 전쟁 준비
4) 남북 대화
Ⅲ. 지하당 공작
1) 통일전선 공작
2) 상층 공작
3) 노동계 침투
4) 국군와해 공작
5) 법정 옥중 투쟁
6) 문예활동
7) 교포공작
8) 해외공작
9) 범민련 운동
10) 비밀단속
11) 결정적 시기
Ⅳ. 결 론
○ 김정일의 군정 간부회의 어록
○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원칙
Ⅰ. 개 요
1) 문제의 제기
북한의 대남 혁명전략 전술에 관한 문제는 이미 여러 전문가들에 의해 무수히 언급되어 왔다. 그러나 그 대부분이 극히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좌·우 대립의 틀 속에서 흔히 흑백논리로 일관되기가 일수였고, 학술적 연구라는 명분 아래 그 진수가 왜곡 전달됨으로써 과거에는 물론. 오늘 현재까지도 정부당국의 대북 정책 수립과 국가안보체계 확립에 많은 혼돈을 빚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후에도 조국통일 3대 헌장 관철,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국정원 보안수사대 해체 등 북한의 대남 공세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일각에는 다소 <변화>를 보이고 있는 북한의 겉모습에 환상을 가지고 <햇볕정책>에 위안을 느끼며 통일이 다 된 것처럼 착각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속성을 모르는데서 비롯되는 무지의 표현이며 극히 위험한 요소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늘 송두율 교수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정치공방 과 그것을 <남북관계>로 미봉 하려는 정치권의 작태는 그대로 묵과할 수 없는 북 맹 증의 대표적 표현이다. 물론 송두율 교수를 감옥에 가두는 그것이 능사로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일부 정치권에서 미봉하고 있는 것처럼 덮어놓고 관용을 베푼다는 것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전 조선혁명이라는 미명 하에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목표로 하는 북한 노동당 규약은 아직 그대로 살아있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송두율 교수는 이 투쟁에서 30여 년 동안 활약한 핵심공작원이다.
누구나 노동당에 입당할 때에는 당과 수령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입당선서를 하고 입당한 다음에는「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에 입각하여 임무 수행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 신임을 받으며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송 교수가 18 차례나 평양을 내왕하며 수십만 달러의 공작금을 받고, 김일성 장례식에 장례위원으로 참배했다는 것은 그만큼 충실했다는 증거로 된다. 그러니 만큼 송 교수는 법앞에 응분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 국회에서는 그런 거물 공작원을 놓고 정치 공방이 벌어지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주지의 사실과 같이 북한의 대남 전략 전술에 대해 학술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당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데서, 특히 남조선 혁명과 통일정책에 관한 중요한 전술적 문제일수록 <김일성 비밀교시>에 따라 극비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 문헌적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북한의 대남 공작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김일성 비밀교시>를 잣대로 하여 그들이 구사하고 있는 전략 전술의 진수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1968년 7월 8일, 노동당 3호 청사 부장회의에서 김일성은 다음과 같이 역설한 바 있다.
"동무들은 우리 당의 전략 전술적 문제들에 대하여 공개해야 할 것과 공개하지 말아야 할 것, 공개해서는 안될 것과 공개해도 무방한 것들을 엄격히 구분해야 합니다.
전략전술을 노출시킨다는 것은 곧, 군사행동에서 작전기밀을 누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혁명에서 패배를 자초하는 관건 적인 문제로 됩니다···통일전선전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당이 남조선의 민족자본가와 부농, 종교인들을 일시적인 전술적 동맹대상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된다면 누가 우리하고 손을 잡겠다고 하겠습니까? ···
그러므로 지하당 통일전선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히 다루어야 하며 당내에서도 극비에 붙여야 합니다."
위 인용문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전략전술을 노출시킨다는 것은 군사행동에서 작전기밀을 누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혁명의 패배를 자초하는 관건 적인 문제로 되는 것만큼 공산주의자들은 당의 전략 전술적 문제들에 대하여 각별한 보안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들이 이렇게 공개해서는 안될 극비 사항에 대해 각별한 보안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북한문제 전문가들이 활용하고 있는 북한의 공개, 일반화된 공식문헌에서는 그들이 공개해도 무방한 그 이상의 전술적 가치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북한의 대남 공작 전술을 연구함에 있어서 그들이 공개, 일반화하고 있는 자료에 대해서는 그것이 아무리 귀중한 1차 자료라 할지라도 대공 정보학적 차원에서 재고되어야 하며, 역사적 경험 자료들을 역 추적하여 그들이 감추고 있는 비밀을 알아내야 한다.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대한민국의 안보상황이 오늘처럼 이렇게 위태롭게 된 것도, 북 핵문제를 비롯해 반미 자살테러가 국제적인 초미의 문제로 떠오르게 된 것도 바로 김일성 비밀교시가 그대로 관철된 결과이다.
이처럼 김일성 비밀교시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물론 문헌적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북한의 비밀교시 자료들을 수집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자료의 전술적 가치로 볼 때, 충분한 자료가 수집되기를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금까지 축적된 자료를 그대로 사장시킨다는 것도 전문가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절박한 사정으로부터 당 연구소는 그간 여러 경로를 통해 자유를 찾아 월남 의거한 전 연락부 지도핵심 공작원들의 진술과 각종 연구 지에 인용된 <김일성 비밀교시>를 분야별로 정리,「북한」지(2001년 10, 11, 12월 호)에 연재함으로써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그 후 많은 전문가들의 권유와 호응에 힘입어 이번에는 김정일의 비밀 어록 등보다 많은 자료들을 수집 보강하여 소책자를 발간하게 되었다.
미흡하나마 이 소책자가 많은 전문가들의 연구 활동에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서두에 대신한다.
2) 비밀교시와 당 정책
국제공산주의 운동역사를 더듬어 볼 때, 그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수령, 당, 계급간의 관계에서 당은 혁명의 참모부이며 수령은 당(계급)의 <최고 뇌수>라는 맑스-레닌주의의 명제 아래 수령의 지위와 역할이 특별히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유독 북한에서는 다른 모든 공산국가와는 달리 수령의 권위가 절대화, 신격화되고 있으며 김일성 주체사상 외에는 그 어떤 사상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당이 국가 위에 군림하고 수령의 교시가 곧 법으로 통한다. 모든 선거는 당에서 추천한 단일 후보에 대한 찬반투표로 실시되며 100% 참가 100% 찬성으로 당선된다.
당과 정부의 모든 의사를 결정하는 당 대회라든가 당 중앙 전원회의 등에서도 모든 사안이 김일성의 혁명사상과 이론에 기초하여 보고서가 작성되고 보고에 대한 요식 토론을 거쳐 만장일치로 가결되며, 공개해서는 안될 주요 시책들은 김일성의 <비밀교시>에 따라 비밀리에 집행되고 있다.
특히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을 목표로 하는 대남 공작은 법적 통제 속에서 남한 정권을 전복하는 혁명전쟁인 것만큼 비밀사업 원칙에 따라 비합법으로 전개되게 된다.
이로부터 남북 대화를 비롯한 북한의 대남 혁명전략과 전술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연구활동에서 김일성 <비밀교시>를 숙지하는 문제가 필수적 요구로 제기되지 않울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학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김일성 <비밀교시>에 응당한 관심을 돌려야 하며 그것을 잣대로 하여 북한의 모든 전략 전술적 의도를 심층 분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김일성의 비밀교시가 곧 그들이 감추고 있는 비밀을 알아낼 수 있는 열쇠로 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공개 일반화하고 있는 공식 자료에 매달려 나타난 현상을 액면그대로 보게된다면 본의 아니게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은 물론, 그 어떤 연구성과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Ⅱ. 혁명전통 계승
김일성의 <비밀교시>는 혁명발전의 매 단계, 매 시기마다 정치·경제·군사·문화·외교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비공개로 행해지기 때문에 해당 분야의 지도핵심 간부가 아니고서는 접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북한 사회 전반에 대한 <김일성 비밀교시> 자료를 입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때문에 본 소책자는 혁명전통 계승과 남조선 혁명, 조국통일에 관한 <비밀교시>를 요약 정리하는 데 한정시키지 않을 수 없음을 미리 고백해 둔다.
1) 후계체제 확립
북한에서 후계자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던 시기는 1973연대 초엽이었다. 소련에서 스탈린이 사망된 후 후르쇼프가 스탈린 개인숭배주의 배격운동과 함께 그의 묘까지 파헤친 충격적인 사실을 목격하자 김일성은 조선에서 제2의 후르쇼프가 나타날 것을 우려하여 연안파를 비롯한 당내 반대파 세력을 모두 제거하고 무소 불 위의 1인 독재체제를 확립했다.
하지만 김일성 가계 우상화에 회의를 느끼는 이완 감정은 권력 층 내부에서 조차 하루도 가셔질 날이 없었다.
남노당 숙청, 연안파 숙청, 갑산파 숙청에 이어 1969년 1월, 인민군 당 4기 4차 전원회의에서 인민무력부 내에 군벌주의 종파를 형성했다는 이유로 김창봉, 허봉학, 최광, 김양춘, 최민철, 김정태 등에 대한 대대적인 군부 숙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72년 2월, 김일성이 둔부 수술 관계로 병실 침대에 누워 있을 당시에도 내각 부수상 김광협, 사회안전부장 석산 등 그 측근들은 문병도 가지 않은 채 주연 상을 베풀어 놓고 후계자를 운운하는 등 지배층 내부에서 수령의 권위를 훼손하는 경향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그러자 김일성은 1973년 2월, 당 중앙 정치위원회를 긴급 소집하고 후계자 옹립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역설하였다.
"최근 소련 공산당과 중국공산당이 심한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것은 후계자를 잘 못 선정한 데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심각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공산주의혁명, 이것은 한 두 대에 이루어 질 수 없는 노동계급의 숙명적 과제이며 역사적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개척한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수해 나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건재해 있는 동안에 그 위업을 계승 할 수 있는 후계자를 잘 선정하고 그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공고하게 다져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소련과 중국의 전철을 밟지 않고 그 어떤 풍파에도 끄떡없이 혁명전통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스딸린은 말렌꼬프를 후계자로 선정했고, 모택동은 임표를 내세웠기 때문에 혁명의 대가 끊기게 된 것입니다. 혁명의 대를 이어나가자면 혁명의 2세, 즉 젊은 세대를 후계자로 내세워야 합니다.
혁명 1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권력에 탐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당내에는 아직도 권력을 넘보는 종파들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4기 4차 인민군 당 전원회의에서 폭로된 바와 같이 창봉이는 인민무력부장 겸 내각 부수상이라는 직위를 남용하여 2인자로 자처하면서 인민무력부 내에 소 왕국을 꾸려놓고 자기가 후계자라고 떠들고 있었는데 이런 배은망덕한 놈이 또 어디 있습니까?···내각 부수상 김광협이도, 사회안전부장 석산이도 역시 같은 놈들입니다.
이 자들은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에 술자리를 벌려놓고 다음은 누구차례다 하면서 내가 죽기만 기다리고 있던 놈들입니다. 그래서 이 자들이 항일투사이지만 묵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요즘 후계자 문제가 거론되니까 일부 동무들이 조직담당비서를 들먹이고 있는 것 같은데 김영주는 내 동생이지만 혁명 1세이기 때문에 안됩니다.
혁명1세가 권력을 넘겨받으면 권위도 서지 않고 종파를 극복하기도 어렵습니다. 지난날 우리가 남로당 파를 비롯해서 연안파, 갑산파 그리고 군부 종파들로부터 얼마나 거센 도전을 받았습니까?
그놈들이 감히 나한테까지 도전장을 던졌는데 누구를 무서워하겠습니까?···
나도 설흔 네 살에 당수가 됐지만 나이 30대이면 어린 나이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만경대 혁명학원 출신인 혁명 2세들로 후계체계를 꾸려주고 권위도 세워주고 자리를 공고하게 다져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혁명의 대를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누구를 후계자로 내세워야 하겠습니까? ··· 솔찍이 말해서 내가 마음놓고 권력을 넘겨줄 수 있는 그 적임자는 정일이 밖에 없습니다.
물론 정일이 한테 는` 이러저한 말성도 있었지만 그것은 어렸을 때 일이고 조금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정일이는 배짱도 있고 끝까지 해 보겠다는 혁명가 적 기질이 있습니다. 모자라는 것은 가르쳐주고 채워주면 됩니다.
정일이를 후계자로 추대하고 그 주변에 우리 항일투사 2세들을 앉혀놓고 우리가 옆에서 지켜주면 됩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나보다도 정일이를 절대화하는 데로 모든 선전수단을 동원해야 합니다."
"일단 후계자로 추대한 다음, 그의 권위를 헐뜯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전체 당원들과 근로자들에 대한 조직적 통제를 강화하고, 그들에게 잡생각을 할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을 만들어 2일 생활총화를 제도화하고, 유일사상체계에 어긋나는 온갖 불순한 요소들에 대해서는 비타협적인 날카로운 사상투쟁을 전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 정권기관 간부들은 물론, 모든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매일 초상화 앞에서 선서를 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도록 함으로써 항상 긴장되고 동원된 태세를 견지하고 오로지 당과 혁명을 위하여 대를 이어가며 충성을 다하도록 해야 합니다."
돌이켜 볼 때 해방 후 반세기에 걸치는 북한 노동당의 역사는 각 파벌간에 영도권을 쟁탈하기 위한 끊임없는 패권 다툼과 피의 숙청으로 얼룩진 수난의 역사였다.
1당 독재의 그 무서운 철권통치 하에서도 김일성 일파로 하여금 그토록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숙청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남노당 파를 비롯한 연안파, 소련파 등 당내 반대파 세력들의 도전이 끊임없이 이어져 온 사실들이 그대로 입증해 준다.
1953년, 남로당 숙청에 이어 8월 종파사건으로 일컬어지는 연안파 숙청, 소련파, 갑산파, 군부숙청 등 수많은 정적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드디어 김일성 1인 독재체제를 확립했지만 북한의 권력 층 내부에서는 심지어 항일투사들 속에서까지 김일성 족벌 세습체제와 당의 유일사상체계에 반기를 드는 세력들이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이렇게 항일투사라는 측근들까지도 믿을 수 없게 되자 김일성은 조선에 제2의 후르쇼프가 나타날 것을 우려하여 급기야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를 소집하고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옹립하기 위한 각본을 꾸미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김일성의 이러한 각본에 따라 정치위원회는 김정일을 후계자로 추대, 결정한 다음 1973년 2월에 그를 당 조직, 사상담당비서로 임명함과 동시에 김일, 최용건, 최현, 박성철 등 자기 측근의 2세들을 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및 정무원의 부장, 부 부장급으로 등용하고 김정일의 후계체계를 뒷받침하는 3대 혁명소조를 급조하여 김정일의 권력체계를 다져 나갔다.
이렇게 하여 김정일은 전 세계 공정한 여론의 비난과 조소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의 아들이라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그의 후광을 업고 당과 군, 행정의 모든 권력을 한 손에 거머쥔 절대 권력자로서 김일성에 버금가는 <향도의 별>, <통일의 구성>, <떠오르는 태양>으로, 김일성 족벌 왕조의 황제로 자리를 굳히게 된 것이다.
2) 전국 혁명
공산주의혁명 논리에 의한다해도 자본주의 제도를 타파하는 노동계급의 사회주의혁명은 변증법적 원리에 따라 자본주의사회의 내적 모순을 타개하기 위한 대립물의 투쟁으로서 남한혁명은 어디까지나 남한사회 내부의 동인에 의해서 수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공산주의자들은 남한혁명을 전 조선혁명의 한 부분, 즉 전 조선혁명에 복무하는 지역혁명으로 간주하고 북한의 사회주의 혁명기지에 의거하여 수행되어야 한다는 명분아래 해방 후 오늘까지 대남 혁명 수출을 집요하게 시도해 왔다.
그러나 6·25 동란을 거치면서 1952년 말, 53년 초에 이르러 남한지역에 잔존해 있던 이현상 빨찌산부대와 남도부 빨찌산부대들이 일망 타진되고, 다른 한편 북한에서 대대적으로 자행된 남로당 숙청으로 말미암아 북한의 대남 공작 역량은 전무한 상태로 떨어졌다.
이로부터 북한은 휴전 이후 빈터 위에서 대남 공작을 다시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전후 복구건설 시기인데다 경제사정이 어려웠던 관계로 대남 공작에 많은 힘을 기울일 수 없었다.
그러다가 1960년 4·19가 일어나자 김일성은 남조선혁명정세가 성숙된 것으로 판단하고 노동당 4차 대회에서 "남조선 현지에 맑스-레닌주의 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새로운 방침을 제시하고 이효순을 국장으로 하는 「남조선사업국」과 그 예 하에 대남공작 전담 부서로 「연락부」, 「문화부」, 「작전부」, 그리고 대남 공작원 양성기지인 「중앙당 정치학교」를 신설하는 등 대남공작 기구를 대폭 확장하고 6·25 당시 의용군으로 월북한 수 천명의 남한 출신들을 공작원으로 선발하여 대남공작을 본격적으로 재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60연대에 들어 대남 공작을 다시 본격화하면서 김일성은 정세가 변화될 때마다 3호청사 부장회의 또는 대남 공작요원들과의 담화를 통해 지하당 공작을 비롯한 통일전선공작, 상층침투 및 노동계 침투, 군 와해공작 등 공작 관련 비밀교시를 내렸다.
"우리는 조국을 통일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두 번 놓쳤습니다. 그 한 번은 6·25이고 또 한 번은 4·19입니다. 6·25 때에는 박헌영의 허위보고 때문에 기회를 놓치게 되었고, 4·19 당시에는 연락부가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해서 놓쳐버렸습니다.
그때 내가 함경도 지방에서 현지지도 하던 도중에 4·19가 터졌다는 보고를 받고 평양으로 달려올 정도로 연락부가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손을 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심각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4·19는 남조선 혁명정세가 무르익은 징조입니다. 이제 다시 한번 4·19와 같은 좋은 기회가 다가오면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동무들도 이런 각오를 가지고 언제든지 기회가 오면 즉각 대처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1974년 4월 대남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남반부 출신들은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없어서는 안될 우리 당의 귀중한 보배들입니다. 내가 왜 남반부 출신 간부들을 보고 <금싸라기>라고 했겠습니까?···
남반부 출신들의 입장에서 볼 때 조국통일! 이것은 곧 자기 고향을 해방하고 부모 형제 자매들을 구출하는 투쟁과 직결됩니다.
지금 우리 앞에는 국토의 1/2과 인구의 2/3를 해방해야 할 과업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가장 절실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그 주인이 누구입니까? 바로 남반부 출신 간부들입니다.
그래서 내가 남반부 출신 간부들을 가리켜 <금싸라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남반부 출신 간부들이 더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더욱 헌신적으로 투쟁하도록 하자면 그들에게 전망 직급도 주고 <금싸라기>처럼 아끼고 보살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남반부출신 간부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적극 투쟁할 수 있습니다." (1974년 4월 대남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아직도 적지 않은 공작 조들이 연고지 공작에 매달리고 있다는데 그런 공작은 가급적으로 삼가 해야 합니다.
연고 선을 이용하는 공작은 처음 발붙이는데는 유리하지만 혈연관계로 얽혀진 조직은 가족주의적 경향으로 흐르기 일수이며 공고한 조직으로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 과거의 경험에서 얻은 결론입니다.
때문에 연고지 공작은 엄호연락 거점을 구축하는 것으로 그치고 당 조직관계는 발생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어디까지나 지하당 조직공작은 군중들 속에서 대상을 물색 선정하고 원칙적인 교양과정을 거쳐 당원으로 입당시키고 조직관계를 발생시켜야 합니다." (1975년 10월 3호청사 확대간부회의)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 거두들을 모두 숙청하고 사형까지 시켰기 때문에 남조선 인민들 속에서는 우리 공화국 북반부에 대해서 배타의식을 가질 수도 있고, 또 적들은 이것을 좋은 악 선전 자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무들이 남조선에 내려가서 대상공작을 할 때, 박헌영이 미제의 고용간첩이었다는 사실과 배철이도 3·8선을 넘어 북으로 들어올 때 자 총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북반부에 들어와서 종파행위를 한 그 죄 행을 낱낱이 폭로하고 남로당을 숙청하지 않을 수 없었던 당시의 사정에 대해 잘 설득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남조선 혁명가들과 인민들이 우리 당의 통일정책과 노선을 지지해 나설 수 있습니다."
(1976년 8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남조선 인민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는 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머리 속에 박혀있는 공미 사상을 뿌리뽑는 것입니다.
미국 놈들을 무서워하는 공포증을 빼버리지 않고서는 계급의식과 민족의식을 높일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동무들이 남조선에 내려가서 공작을 할 때, <프예블로호 사건>이라든가 이번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 같은 실례를 들어가며 미국 놈들은 겁이 많은 놈들이고 죽는 것을 제일 무서워하는 종이 범이라는 것을 잘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이번에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면 이번에는 미국 본토가 불바다가 될 것이라는 소문을 은근히 퍼뜨려야 합니다. 그래야 남조선 인민들이 더 용기를 가지고 반미투쟁에 떨쳐나설 수 있습니다."
(1976년 8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우리가 일제 식민지 통치시기에 나라의 절반 땅만 해방시키자고 항일 무장투쟁을 했겠습니까?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미국 놈들이 남조선을 강점했기 때문에 아직 통일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
결국 조국통일의 관건은 미국 놈들을 몰아내는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미국 놈들이 월남에서 손을 뗀 것처럼 남조선에서 물러나게 하자면 미국 놈들이 골치가 아프도록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합니다.
주한미군의 야수적 만행과 각종 비인간적 범죄사실을 낱낱이 폭로하고 국제적으로 여론화하는 동시에 세계 도처에서 반미운동을 일으키고 미국 국민들이 반전운동을 일으키도록 해야 합니다." (1976년 8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3) 전쟁 준비
1960연대에 들어서면서 중·소 이념 분쟁이 격화됨에 따라 사회주의진영의 통일단결이 약화되고, 남한에서의 5·16 군사혁명과 쿠바의 카리브해 위기사태 등 국제정세가 긴장되게 되자 김일성은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노선」과「4대 군사노선」,「경제건설과 국방건설 병진 노선」을 제시하고 막대한 예산을 군사비로 지출하며 각종 군수공장을 신설 확장하는 등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 후 김일성은 1965년 <통킹만 사태>로 인한 월남전의 확대와 68년 1월 청와대 육박사건, <프예블로호> 나포 사건 등 한반도 주변 정세가 긴장될 때마다 당 군사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비공개 회의석상에서 전쟁준비를 다그칠 데 대해 역설하였다.
"남조선에서 미국 놈들을 몰아내야 하겠는데 그놈들은 절대로 그냥 물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언젠가는 미국 놈들과 다시 한번은 꼭 붙어야 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전쟁준비를 다그쳐야 합니다···
현 시기 전쟁준비를 갖추는데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계 전쟁역사에는 수백, 수십 건의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지만 미국이 개입하지 않은 전쟁이 없었고, 그 모든 전쟁이 타 지역에서 일어난 전쟁이었기 때문에 미국 본토에는 아직까지 포탄 한 발 떨어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던 미국 본토가 포탄 세례를 받게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때에는 상황이 달라질 것입니다.
미국 국내에서는 반전운동이 일어날 것이고 거기에 제3세계 나라들의 반미 공동행동이 가세되게 되면 결국 미국 놈들이 남조선에서 손을 떼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동무들은 하루 빨리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자체 생산 할 수 있도록 적극 개발해야 합니다."
( 1968년 11월 과학원 함흥분원 개발 팀과 의 담화 )
"<프예블로호>가 최 첨단기술로 장비된 미 국가안전국 소속 정보 함이라는 보도가 나가니까 벌써 소련 군사 고문단에서 눈독을 들이고 <프예블로호>를 감식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주문이 왔다고 하는데 절대로 그냥 공개하면 안됩니다.
그 동안 우리가 미사일을 가지고 얼마나 신경전을 벌였습니까? ···감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더라도 이번에는 그 대가를 톡톡히 받아내야 합니다.
이번에는 소련에서 <프예블로호>를 보기 위해서도 미사일을 내놓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1968년 4월 국방과학원 확대간부회의)
"지금 미국 놈들은 <프예블로호>가 나포됐다고 해서 태평양 함대의 군함 32척을 원산 앞 바다에 깔아 놓고 보복을 하겠다고 공갈을 치고 있는데 아직 그 선원들이 우리 손에 잡혀있기 때문에 미국 놈들은 함부로 불질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도 않고 두려워 할 것도 없겠지만 전쟁은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야 합니다.
이번에 또다시 전쟁이 붙게될 경우에는 그 규모와 가열 도에 있어서 6·25 당시와는 비교도 안됩니다.
설사 전쟁에서 우리가 이긴다고 해도 양쪽 모두 쑥밭이 되겠는데 그 동안 건설해 놓은 거 다 파괴시키고, 한 절반 죽은 다음에 통일을 시키면 뭘 하겠습니까?···
그러나 미국 놈들이 끝까지 전쟁을 강요한다면 우리는 사생결단을 하고 싸워야 합니다.
이번 전쟁은 우리 민족의 생사 존망을 좌우하는 판 가리 싸움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우리가 진격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물러서지 말고 진지를 사수해야 합니다.
적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밀리기 시작하면 갱도를 짊어지고 퇴각할 수도 없고, 그렇게 되면 그 동안 힘들여 구축해 놓은 지하갱도가 모두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1968년 1월 당 군사위원회)
"현대전은 전방과 후방이 따로 없는 입체전이며 장기전입니다. 현대전의 승패를 좌우하는 관건은 장기전에 상응하게 누가 더 많은 전략물자의 예비를 조성하느냐 하는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적어도 3년 분 이상의 전략물자의 예비를 조성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실사를 시켜보니까 식량은 6개월 분도 여유가 없습니다. 그 동안 농업위원장이 나한테 허위보고를 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식량배급을 줄여서라도 3연분 이상의 군량미를 비축해야 합니다."
(1968년 1월 당 군사위원회)
"적의 공격을 좌절시키기 위해서는 방어전과 함께 적 후 종 심에 제2전선을 형성하고 배후를 강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보여단 주력부대가 삽 시에 종 심으로 침투할 수 있는 땅굴을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합니다···
경보여단은 배후를 강타하여 적의 군사력을 분산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파주나 동두천에 있는 미군 기지를 하나 포위하고 미군 부대를 인질로 잡아두는 작전을 시도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이번에 보니까 미국 놈들은 죽는 것을 제일 무서워하는 겁이 많은 놈들입니다. 미군 부대를 인질로 잡아두는 작전이 성공되기만 하면 전쟁은 의외로 빨리 종결될 수도 있습니다." (1968년 1월 당 군사위원회)
"내가 왜 땅굴을 파라고 했겠습니까?··· 땅굴은 경보여단 주력부대가 순시간에 적 후 종 심에 침투할 수 있는 유일한 침투로 입니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그런 방법으로 대 병력이 침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돈이 들더라도 시간이 있을 때 전략적 요충지대 곳곳에 땅굴을 미리 파두어야 합니다.
지금은 물론 힘도 들고 어렵겠지만 일단 전쟁이 일어났다 하면 그 때에는 이 땅굴이 몇 십 배의 진가를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1968년 1월 당 군사위원회)
"막상 전쟁이 일어났다고 가정했을 때 방어에만 급급해도 안 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국 본토를 강타해야 합니다.
미사일을 가져야만 때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남미에 나가있는 특공대를 투입시키고 교포 조직을 동원할 수도 있습니다. 핵폭탄이 없으면 화학무기를 살포해도 됩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미국 본토에 혼란이 일어나도록 하기만 하면 됩니다. 본토뿐만 아니라 세계 도처에 널려 있는 미군기지를 폭파해도 좋습니다. 이렇게 매운 맛을 보게되면 미국 국내에서는 반전운동이 일어날 것이고 미국 놈들은 갈팡질팡 하게 될 것입니다." (1974년 8월 당 군사위원회)
"고속도로가 있으면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우리가 도로를 확장하지 않고 철도도 복선으로 깔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방어선이 무너져 전선이 밀리게 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적 기계화 부대의 발목을 잡아두기 위해서 입니다.
2차 대전 당시 동구라파 전선에서 물밀듯이 밀고 들어가던 히틀러 군대의 진격속도가 어디서 멎었습니까?···
소련 국경을 넘으면서 멎었습니다. 소련의 철도가 국제 표준 규격보다 한 뺨 정도 넓었기 때문에 독일 군 군용 열차가 탱크부대의 뒤를 따라 들어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스탈린이 숨 돌릴 여유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약 전선이 무너져 우리가 뒤로 밀리게 될 경우에 적 기계화부대의 발목을 잡아두자면 지금은 다소 불편하더라도 철도도 단선 그대로 놔두고 도로도 재래식으로 그냥 놔둬야 합니다." (1968년 1월 당 군사위원회)
"이번에 또다시 전쟁이 붙게 될 경우에 이번에는 제공권을 장악해야 합니다. 6·25 때에 우리가 제공권을 빼앗겨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까?···그래서 그 동안 우리는 공군력을 증강하는데 많은 힘을 집중했습니다.
우리가 월남전에 공군을 지원했던 것도 조종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월남전에서 소련, 중국, 그리고 우리 비행대가 교대로 하노이 상공을 지켰는데 우리 비행대가 지킬 때에는 미국 놈들의 비행기가 하노이에 못 들어 왔다고 합니다. 그만큼 미국 놈들도 우리를 무서워합니다···제공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군력을 증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 대공, 공대 공 미사일을 비롯한 각종 포 화력으로 반 항공 망을 형성하고 명중률을 높이도록 해야 합니다." (1968년 1월 당 군사위원회)
"핵미사일을 개발하는 데서도 이론에서는 뒤지지 않았고 장비가 문제라고 하는데 결국은 돈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외화를 벌어드릴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많은 투자를 하지 않고 외화를 벌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아편이라고 하는데 그런 거라면 못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한번 대담하게 시도해 보십시오 아편은 마약이니까 저 양강도 고산시대에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없는 특별 구역을 만들어 놓고 통제를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약은 국제법상으로도 문제될 수 있으니까 말썽 없도록 해야 합니다." (1968년 1월 당 군사위원회)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현 휴전상태에서 북한의 입장에서는 모든 힘을 전쟁준비에 쏟고 있는 것이 당연한 논리일 것이다.
이로부터 북한은 전후 복구건설의 어려운 시기에도 중공업의 우선적 발전, 특히 군수공업 발전에 힘을 집중하고,「자립적 민족경제건설 노선」과「경제와 국방 병진노선」이라는 미명 아래 해마다 GNP의 20∼25%에 해당하는 막대한 예산을 군사비로 지출하면서 전쟁준비에 광분해 왔다.
그 후 60연대 중반에 이르러 월남에서의 <통킹 만 사태>와 1968년 <프예블로호 사건> 등 한반도 주변 정세가 긴장되게 되자 김일성은 정세가 악화될 때마다 당 군사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비상 대책회의를 열고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자위적 국방이라는 구호아래 전쟁준비에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동구 사회주의가 붕괴와 김일성 사망으로 국제적 고립이 가중되자 김정일은 <우리 식 사회주의> 와 <선군 정치>를 표방하며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한 고난의 행군을 강행하여 마침내 핵·미사일 개발을 완성시켰다.
그 결과 오늘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공갈을 칠 수 있을 정도로 세계 제5위의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현재 북한은 전군 간부화, 전민 무장화, 전군 현대화, 전국 요새화를 기본 내용으로 하는 4대 군사노선에 따라 모든 군인들이 한 등급 이상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간부 군대>로 훈련되어 있고, 110만 이상의 정규군에 <교도대>, <노농적위대>, <붉은 청년근위대> 등 전 인구의 1/3 이상이 무장되어 있으며, 전방과 후방의 주요 군사시설들이 모두 지하갱도에 대피할 수 있도록 전국이 요새화 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핵·미사일을 비롯한 각종 현대적 신형무기, 대량살상무기를 자체 개발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이제는 미사일 수출국으로서의 `위용`을 떨칠 수 있게 된 것이다.
4) 남북 대화
공산주의자들의 대화 전술은 혁명정세가 불리할 때, 시간을 벌기 위해 구사하는 위장 평화공세의 한 수단이며 공개 합법적인 통일전선 전술이다.
60연대 중 후반의 동베를린 사건, 통혁당 사건 등 연이은 대형 사고로 말미암아 대남 공작이 돌연 침체기를 맞게되자 정세를 관망하던 북한은 때마침 남측에서 제의한 적십자회담에 응하지 않을 수 없어 휴전 후 처음으로 남북 대화가 성사되게 되었다.
1972년 8월 제1차 남북 적십자회담(평양)이 개최될 당시 김일성은 회담 대표들과의 담화에서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남북적십자회담이 개최된다고 하니까 일부에서는 통일이 무르익어 가는 줄 알고 있는데···이산가족 찾기라는 그 자체로서는 흥미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적십자회담을 통해서 합법적 외피를 쓰고 남조선으로 뚫고 들어갈 수 있는 길이 트일 것 같으면 회담을 좀 끌어보고 그럴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것 같으면 남조선 측에서 당장 받아들일 수 없는 <반공법 철폐>, <정치활동의 자유>와 같은 높은 요구조건을 내걸고 회담을 미련 없이 걷어 치워야 합니다. 그리고 회담이 진행되는 기간 이 회담장을 우리의 선전무대로 이용해야 합니다."
"적십자 이염도 좋고 인도주의 원칙도 좋지만 문제는 혁명의 이해에 부합되어야 합니다. 현 단계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이라든가 서신교환, 자유왕래 같은 것은 우리에게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반공법이 철폐되고 정치활동의 자유가 보장된다면 자유왕래도 해 볼만 하지만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러니까 적십자회담에서도 너무 서두르지 말고 시간을 끌면서 기회를 노려야 합니다.
만약 회담이 진척되어 이산가족 상봉단계에까지 간다 하더라도 판을 크게 벌리지 말고 이산가족 상봉도 우리의 감시 권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남조선 측에서 우리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여 이산가족들의 자유왕래가 실현되고, 정치활동의 자유가 보장될 경우에 대비해서 월남자 가족들과 월북자들 가운데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선발해서 공작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시켜 두어야 합니다.
지금 월남 자들 가운데에는 돈을 많이 번 갑부도 더러 있지만 밑바닥 인생을 헤매는 서민들이 절대 다수입니다.
이들 모두가 우리 혁명의 기본 동력으로 될 수 있습니다. 월남 자들은 그 동기와 경위가 어찌됐든 우리 공화국을 배신하고 남쪽으로 도주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 나름대로 죄 의식을 느낄 수도 있는데 통일이 되면 일체 과거에 대해 묻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혁명을 하다 보면 때로는 암초에 부디 칠 때도 있고, 계급적 원수들과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공산주의자들은 주도권을 튼튼히 틀어쥐고 계급적 원칙을 철저히 고수해야 하며 한치도 양보하지 말고 완강하게 밀고 나가야 합니다.
협상과 대화도 하나의 전투입니다. 적과의 전투에서 양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설사 협상이 결렬된다 해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왕에 결렬될 바에는 담 벽도 문이라고 두들겨 억지를 부려서라도 적들의 간담을 써늘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계급적 원수들과는 타협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적과 타협을 한다는 것은 혁명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우리가 남조선 당국자들과 대화를 하는 것은 대화를 통해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자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지 그들과 타협을 해서 현상을 유지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대화가 결렬될 경우에는 그 책임을 적들에게 넘겨씌워야 합니다. 동무들은 항상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북반부에는 민간단체가 없지만 남조선에는 그 이름도 잡다한 민간단체가 수 없이 많습니다. 그 중에는 자생적 민간단체들도 있고 우리가 만든 민간단체도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지 실정을 잘 이용해야 합니다.
남조선 당국자들을 반민족적 분열주의 세력으로 몰아붙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민간단체를 만들어 남조선 인민들 속에서 통일열기를 북 돋구고 각종 조직 단체들을 동원하여 민간통일운동에 불을 붙여야 합니다. 그래야 통일문제를 둘러싼 모든 대화에서 적들을 피동에 몰아넣고 주도권을 잡을 수 있습니다."
Ⅲ 지하당 공작
지하당 공작이라고 하면 남한으로 파견되는 공작원들이 지하당을 구축하고 동조세력을 규합하여 혁명역량을 형성하며 남한의 자본주의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모든 공작활동을 말한다.
지하당은 문자 그대로 합법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비합법 혁명조직인 만큼, 그 모든 활동은 비밀리에 행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지하당의 모든 공작활동이 비밀에 속하는 문제이지만 그 중에는 일반 당원들에게는 공개하지 않고 각급 지도부의 핵심 간부들에게만 시달되는 극비 사항이 있다. 그것을 공작 영역 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1) 통일전선 공작
통일전선이란 혁명의 일정한 전략적 단계에서 당면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각 정당 사회단체 및 개별적 인사들과 정치적 연합을 실현하는, 즉 동맹자를 전취하기 위한 공작활동을 말한다.
공산주의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혁명은 대중을 위한 대중 자신의 사업인 만큼 대중 자신이 참가하지 않고서는 승리 할 수 없으며 혁명의 승패를 좌우하는 관건은 누가 더 많은 군중을 쟁취하는가 하는 그 여하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김일성은 남한의 각계 각층 광범한 동조세력을 규합하기 위한 통일전선공작전술에 대하여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동무들은 우리 당의 전략 전술적 문제들에 대하여 공개해야 할 것과 공개하지 말아야 할 것, 공개해서는 안될 것과 공개해도 무방한 것들을 엄격히 구분해야 합니다.
전략전술을 노출시킨다는 것은 군사행동에서 작전기밀을 누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혁명에서 패배를 자초하는 관건 적인 문제로 됩니다···
통일전선전술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당이 남조선의 민족자본가와 부농, 종교인들을 일시적인 전술적 동맹대상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된다면 누가 우리하고 손을 잡겠다고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지하당 통일전선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히 다루어야 하며 당내에서도 극비에 붙여야 합니다."
(1968년 7월, 3호 청사 부장회의)
"각 당 각파, 각계 각층 인사들과 제휴 합작을 하고 그들과 통일전선을 한다고 해서 합작 상대에게 용해되거나 혁명의 목적에 위배되는 무원칙한 단결을 운운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궁극적인 목적도 현 정권을 타도하고 우리 수중에 정권을 장악하자는 데 있는 만큼, 통일전선공작을 단순한 공동행동으로, 동등한 연합으로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통일전선체 내에서도 엄연히 주종관계가 있어야 하며 여기에서 합작 상대에게 먹히울 수 있는 그러한 통일전선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1968년 7월 3호 청사 부장회의)
"통일전선공작에서 또한 우리가 주목을 돌려야 할 것은 전술적 동맹대상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동맹대상이 부농이나 민족자본가라고 해서 덮어놓고 경계하고 경원시 한다면 결국 그들은 반혁명의 편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때문에 우리는 전술적 동맹대상의 2중성을 고려하여 단결하면서 투쟁하고 투쟁하면서 단결하는 원칙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놓치지 말고 우리편으로 끌어 당겨야 합니다.
만약 그들이 통일전선에 응하지 않을 경우에 그들과 합작은 못할망정 반혁명의 편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압력을 가해서라도 최소한 중립이라도 지키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1968년 7월 3호 청사 부장회의)
"통일전선 공작에서 상 하층에 대한 개념을 똑바로 인식해야 합니다. ···하층통일전선을 위주로 해야 한다고 하니까 어떤 둥무들은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들을 무조건 하층으로, 그리고 정계, 사회계, 종교계의 지식층 인사들을 상층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것은 큰 잘못입니다.
실제로 통일전선공작을 수행하는 그 집행단위가 어디입니까? 두말할 것 없이 그것은 각급 지하당 지도부이며, 각급 지도부가 1 대 1로 상대하는 대상 조직은 그 지역 단위에 있는 각 정당 사회단체 개별적 인사들입니다.
따라서 그 정당 단체의 지도부는 상층으로, 그리고 그 조직의 일반 구성원은 하층으로 구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회적 신분과 지위로 볼 때에는 상류층에 속하는 정계인사라 하더라도 그가 소속 정당 단체의 일반 구성원일 경우에는 하층의 개념에 속하게 되고, 반대로 노동조합의 말단조직을 공작대상으로 했을 때에는 사회적 신분이 노동자이지만 그 조합의 간부들은 상층의 개념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1968년 7월 3호 청사 부장회의)
"또 하층통일을 위주로 해야 한다니까 일부 동무들은 그저 덮어놓고 하층공작에만 매달리고 있는데···하층통일을 위주로 해야 한다는 우리 당의 방침은 어디까지나 일반론이지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지금 남조선에서는 신민당을 비롯해 각 군소 정당들과 언론단체, 종교단체의 상층 지도부가 군사정권을 반대하여 아주 잘 싸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각 정당 단체 상층 지도부의 경향성이 좋을 경우에는 상층공작을 위주로 하여 적극적인 공세를 취해야 합니다. 그래야 빠른 시일 내에 보다 많은 공작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 1968년 7월 3호 청사 부장회의 )
"지하당 통일전선공작은 적들의 탄압 속에서 재야인사는 물론, 때로는 우익단체 인사와도 접촉하게 되는 것만큼 항시 적인 위험을 동반하게 되며 고도의 기술을 요하게 됩니다. 때문에 각급 지하당 지도부는 이 사업을 아무에게나 맡기지 말고 전문적인 특수 공작 조에 전담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전문공작 소조 원들도 대상과의 접촉 범위와 노출정도에 따라서 수시로 교체해야 합니다. 그래야 적들의 탄압으로부터 피해 범위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1968年 7월 3호 청사 부장회의)
2) 상층 공작
"지금 남조선에는 5·16 쿠테타로 말미암아 폭삭 망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 모두가 박정희 군사정권에 대해 이를 갈고 있으며, 그 중에는 정치인들도 있고 구 관료도 있고 양식 있는 지식인, 종교인, 언론인들도 많은데 김종태와 같이 우리하고 선이 닿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혁명가들이 대담하게 접근해서 좋은 대상을 물색해야 합니다. 김종태와 같은 사람 서너 명만 잡게 된다면 남조선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것도, 조국통일의 대 사변을 맞이하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1969년 12월 대남 담당요원들과 의 담화)
"칠레에서의 아옌데의 경험은 선거를 통해서도 정권을 탈취할 수 있다는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옌데가 실패한 원인은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은 다음, 너무 급진적으로 개혁을 서두르다가 역 쿠테타를 당한데 있습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말미암아 민심이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남조선 인민들의 반 박정희 감정을 잘 유도하여 OOO과 같은 명망 있는 인물들을 내세운다면 국회에도 얼마든지 파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대 국회공작에서도 프락치 공작에 그치지 말고 의석을 확보하는 공작으로 전환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974년 5월 대남공작 담당요원들과 의 담화)
"유성근(전 서독 주재 한국대사관 노무관)의 경우를 볼 때, 남조선에는 고등고시에 합격되기만 하면 행정부, 사법부에도 얼마든지 파고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려져 있습니다.···
앞으로는 검열된 학생들 가운데 머리 좋고 똑똑한 아이들은 데모에 내몰지 말고 고시준비를 시키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열 명을 준비시켜서 한 명만 합격된다 해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됩니다.
그러니까 각급 지하당 조직들은 대상을 잘 선발해 가지고 그들이 아무 근심 걱정 없이 고시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물심 양면으로 적극 지원해 주어야 합니다." (1973년 4월 대남 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중앙정보부나 경찰조직에도 파고들 수 있는 구멍이 있습니다. 공채 시험을 거쳐 들어갈 수도 있고 학연, 지연 등 인맥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남조선에서는 간부사업이 그 어떤 당적, 계급적 원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흔히 권력층의 인맥관계에 의해 좌우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자본주의 제도의 본질적인 약점입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김종필, 이후락, 윤필용 간에 치열한 3각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데 이들의 알력과 갈등, 학연, 지연관계를 잘 이용하면 권력 핵심부에도 얼마든지 파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1973년 4월 대남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남조선에 내려가서 제일 뚫고 들어가기 좋은 곳이 어딘가 하면 교회입니다. 교회에는 이력서, 보증서 없이도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고, 그저 성경책이나 하나 옆에 끼고 부지런히 다니면서 헌금이나 많이 내면 누구든지 신임 받을 수 있습니다.
일단 이렇게 신임을 얻어 가지고 그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미끼를 잘 던지면 신부, 목사들도 얼마든지 휘어잡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공작원들이 남조선의 현지 실정을 어떻게 잘 이용하느냐 하는데 달려있는 것입니다."
(1974년 4월 대남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요즘 남조선에서 지식인, 종교인들이 아주 잘 싸우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남조선에 내려가서 지식인의 탈을 쓰고 박혀야 합니다.
현 단계에서는 노동자, 농민 열 명 스무 명을 포섭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학생, 지식인 하나를 잡는 것이 월척을 낚는 것으로 됩니다. ···
또 남조선에는 흔한 것이 교수 박사입니다. 그 가운데 빽이 든든한 사람을 제외한 대다수의 지식인들은 어렵게 박사 학위를 따고서도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실업자나 다름없습니다. 요행 대학 교수로 들어갔다 해도 인맥관계에 밀리어 연구활동의 기회를 얻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이렇게 춥고 배고픈 교수, 박사들에게 프로젝트를 하나 따주는 형식을 취한다면 그들을 얼마든지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1974년 4월 대남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3) 노동계 침투
"학생 지식인들의 운동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혁명정세를 더욱 격화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야 합니다. 노동계급이 일어나야 군사독재 정권을 강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남조선 노동자들은 한국노총이라는 어용노조에 얽매여 있고, 또 복수노조 금지법, 쟁의 조종법, 과 같은 각종 악법으로 규제를 받고 있기 때문에 노동운동이 기를 피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조선 혁명가들은 노동자들 속에 깊이 파고 들어가 그들을 의식화, 조직화하고 투쟁을 통해 부단히 단련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결정적 시기를 앞당길 수 있습니다." (1976년 4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노동계 침투공작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는데 공작성과가 금방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서로 기피하면 누가 대신 해주겠습니까?···그런 정신상태를 가지고 어떻게 혁명을 한다고 하겠습니까? 그 머리부터 뜯어 고쳐야 합니다.
조직에서 맡겨주는 혁명과업을 지상 명령으로 알고 무조건 끝까지 완수하는 혁명가 적 기질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을 상대로 하는 공작은 힘이 좀 들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끈질기게 달라붙어 해결하는 그런 사업기풍을 확립해야 합니다."
(1976년 4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전태일의 분신 자살···! 이것이 얼마나 좋은 선동 자료입니까···? 물론 청계천 피복노동조합이라는 것이 보잘 것 없는 조직이지만 우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전태일을 영웅으로 만들고 추모사업회도 가지면서 대대적으로 선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남조선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더 단결할 수 있고, 그의 죽음을 헛되이 여기지 않고 그 정신을 본받게 됩니다." (1976년 4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노동계에 침투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투쟁에서 단련되고 검열된 조직원을 산업현장에 새로 입사시키는 방법과 각 공장 노동자들 속에서 경향성이 좋은 노동자들을 외부에서 물색하여 포섭하는 방법 등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에 가장 좋은 방법은 학생운동 출신 핵심당원들을 고졸자로 신분 위장하여 취직시키는 방법이고, 후자의 경우는 중요 위장취업 조건이 여의치 않은 공단지역 곳곳에 <노동상담소> <야학 방> 같은 것을 차려놓고 노동자들이 몰려오게 하여 자연스러운 대인관계를 형성해 가지고 물색 포섭하는 방법입니다. 지하당 조직들은 현지 실정에 맞게 각 산업 현장에 핵심들을 침투시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노동자들을 의식화, 조직화해야 합니다." (1976년 4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한국노총은 관제어용단체이며 각 산업현장에 이미 조직되어 있는 노동조합은 바로 그 한국노총의 산하 조직입니다.
이러한 어용노조를 그대로 두고서는 노동운동을 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때문에 지하당 조직들은 각 단위 사업장
노조들을 와해시켜 그것을 점차 지하당의 영향하에 흡수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용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조합원들을 포섭 쟁취한 다음 노조 집행부의 비리를 폭로하고 노조 간부들과 조합원들 사이에 이간을 조성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다음 번 선거에서 새 집행부를 신망 있는 우리 사람으로 교체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1976년 4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남조선에서 노동자들이 드디어 들고일어났습니다. 사북 탄광의 유혈사태는 반세기에 걸친 식민지 통치의 필연적 산물이며 인간 이하의 천대와 멸시 속에서 신음하던 노동자들의 쌓이고 쌓인 울분의 폭발입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청년학생, 도시 빈민 할거 없이 전 민중들이 이글거리고 있습니다.
남조선 혁명가들과 지하혁명 조직들은 이번 사북 사태가 전국으로 확산되도록 적극 불을 붙이고 청년학생들과 도시 빈민 등 각계 각층 광범한 민중들의 연대투쟁을 조직 전개하여 더 격렬한 전민 항쟁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 1980년 5월 3호청사 부장회의 )
"각 단위 노조를 조직한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노동계급은 그 어느 다른 계급계층 보다도 가장 혁명적인 계급이며 업종도 다양하고 광범한 영역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노동조합을 강 유력한 혁명적 조직으로 강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하여 지역별, 업종별로 묶고, 전국적 규모의 조직으로 확대하고 정치세력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 사업장에서 일어난 파업투쟁을 지역별 연대파업으로, 전국적인 총 파업으로 확대시킬 수 있고 노동계급의 혁명적 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1987년 10월, 대남사업담당 요원들과의 담회)
4) 국군 와해공작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의 혁명적 대 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혁명의 주력군을 튼튼히 꾸리는 공작과 함께 반혁명적 무장력인 국군을 혁명의 편으로 돌려세워야 한다는 것이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논리이다.
이로부터 김일성은 대남 공작원들과 면접할 때마다 군 침투공작의 중요성에 대해 누누이 강조해 왔다.
"남조선 괴뢰군은 작전 지휘권도 없는 미제의 고용병으로써 식민지 대리정권을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이며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반혁명 무장력 입니다.
괴뢰군을 와해 전취 하지 않고서는 조국통일의 혁명적 대 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할 수 없습니다. 과거 1948년에 있었던 여·순 군인폭동과 표무원, 강태무 대대의 의거입국 사건은 좋은 경험으로 됩니다.
남조선 혁명가들과 지하혁명 조직들은 혁명역량을 꾸리는 사업과 함께 괴뢰군을 와해 전취 공작에 항상 깊은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 1968년 1월 대남공작 담당요원들과 의 담화 )
"남조선 괴뢰군은 조국과 민족을 위한 군대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로 징집된 용병이기 때문에 사상적 지주가 없고, 사명감도 없으며 군복을 입은 노예나 다름없습니다.
이들이 누구를 위하여 무엇 때문에 총을 잡아야 하는지! 자각하게 된다면 얼마든지 혁명의 편으로 돌아설 수 있습니다.
각급 지하당 조직들은 괴뢰군을 와해 전취할 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고 이 사업을 대담하게 벌여나가야 합니다."
(1968년 1월 상 동 )
"군 침투공작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은 중, 하층 장교들입니다. 지금 중, 하층장교들 중에는 직위 불만 자들이 많은데 그 대부분이 비 육사출신이며 또 육사출신들 가운데서도 타 지역 출신 장교들은 경상도 출신 들 한테 밀리어 소외감을 갖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출신지역과 육사, 비 육사간의 갈등을 이용하여 그들을 자극하고 희망을 불어넣어 준다면 얼마든지 혁명의 편으로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1968년 1월, 상 동 )
"연락부에서 아주 큰 일을 했습니다. 이번에 들어온 동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역시 흥미 있는 대상은 예비역 장교들입니다. 이들은 많은 현역 장교들과 선, 후배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남조선 사회는 돈 없이 살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군에서 제대된 후에도 능력이 없으면 별 볼일이 없겠지만 대상에게 별 보다 빛나는 자리를 만들어주고 돈 잘 버는 사업가로 등장시킨다면 많은 장교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비역 장교를 포섭하여 얼굴 마담으로 잘 이용하면 장교들과의 대인관계를 넓혀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1975년 2월 대남 공작원과 의 담화)
"과거에는 학생들에게 군 입대를 기피하도록 선동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남조선의 사회환경이 달라졌고, 학생들의 의식도 달라졌습니다.
남조선 군대가 식민지 고용병이고, 또 군대의 위상이 떨어졌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오히려 자원 입대하도록 적극 교양 해야 합니다.
대 국군 공작을 보다 진공 적으로 벌여나가기 위해서는 학생운동에서 검열되고 단련된 핵심들을 집단 입대시켜 그들로 하여금 동료 사병들을 의식화하고 포섭하도록 하여 군대 내에 조직을 부단히 확대시켜 나가야 합니다."
(1988년 8月 대남 공작원과 의 담화)
"윤 이병의 <양심선언>으로 보안사령부가 쑥밭이 되고, 괴뢰 군부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 흔들리고 있습니다.
<양심선언> 한 마디가 이렇게 큰 파문을 일으킨 것입니다.
남조선의 군대를 와해시키기 위해서는 병사들과 중, 하층장교들을 포섭 쟁취하는 공작과 함께 필요한 시기에 탈영, 항명, 하극상, 양심선언과 같은 각종 형태의 투쟁을 조직 전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종 의문사 진상규명 투쟁을 전국적으로 벌여 군 내부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군부 상층을 압박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군의 위상을 실추시키고 지휘 통솔체계를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1990년 10월, 대남사업담당 요원들과의 담화)
5) 법정·옥중투쟁
법정투쟁, 옥중투쟁 전술은 지하당 조직원들이 남한의 수사기관에 체포됐을 경우에 법 체제의 미비점을 역용 하여 조직의 비밀을 엄수하고 피해 범위를 최소화하기 위한 교활한 전술이다.
원래 공산주의혁명은 자본주의제도를 부정하고 폭력으로 전복하려는 적대행위인 것만큼, 법적으로 규제되기 마련이며, 활동 과정에는 어쩔 수 없이 체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일단 체포되게 되면 수사기관으로부터 고문을 당하기가 일수이고 각종 회유공작에 부딪히게 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이다.
이럴 경우에 대비하여 공산주의자들은 조직의 안전과 비밀을 고수하도록 하기 위해"혁명의 길에서는 살아도 영광, 죽어도 영광"이라는 구호 아래 사상교양을 강화하면서 혁명적 지조를 지키고 조직의 안전과 비밀을 목숨으로 사수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대남 공작원들과의 담화가 있을 때마다 김일성이 특별히 강조하는 것도 혁명적 절개를 꿋꿋하게 지키고 혁명가답게 장렬하게 최후를 마쳐야 한다는 것이다.
"남조선혁명을 위해 투쟁하는 우리 혁명가들이 적들의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기본이지만 만부득이 적들에게 체포될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불가피하게 체포됐을 때에는 우선 모든 증거를 인멸시키고 유력한 변호사를 금품으로 매수해서 내세워야 합니다. 변호사는 법정에서 우리의 유일한 방조자입니다.
변호사에게 백 만원 쓰느냐 천만 원 쓰느냐 하는 그 액수에 따라서 그의 말소리가 달라집니다···그리고 법정에 나서게 되면 예심과정에 있었던 진술내용도 모두 번복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왜 예심과정에 그렇게 진술했는가` 라고 판, 검사가 물으면 경찰에서 하도 무지하게 고문하기 때문에 고문에 못 이겨 가 진술했던 것이라고 끝까지 버텨야 합니다.
그러면서 고문당한 상처와 흔적을 내보이며 적들의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전횡을 가지고 역습을 들이대야 합니다. 그래야 죄가 감면될 수 있고 잘하면 무죄로 풀려날 수도 있습니다." (1968년 12월 대남 공작원들과의 담화)
"고문을 하는 것도 기술이고 고문을 당하는 것도 기술입니다. 고문을 이겨내지 못하고 하나씩, 둘씩 불기 시작하면 또 나올 것이 있는 줄 알고 더 고문하기 때문에 결국 비밀은 지키지도 못하고 다 불어버린 다음에도 계속 고문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될수록 고문을 적게 당하고 비밀을 지키면서 고문을 이겨내려면 강인한 의지를 가지고 완강하게 버텨야 합니다.
그리고 고문을 기술적으로 모면하기 위해서는 고문이 시작될 때, 먼저 자해행위를 해서 까무라쳐 버리는 방법을 쓸 필요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고문하는 쪽에서도 흥미가 없기 때문에 제풀에 꺾이게 됩니다."
(1968년 12월 대남 공작원들과의 담화)
"설사 법정에서 실형을 받고 감옥에 들어간다 해도 혁명가들은 언제든지 구출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혁명가의 지조를 굽히지 말아야 합니다. 적들의 회유와 기만술책에 넘어가 전향을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망상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전향을 해 가지고 감옥에서 풀려난다 해도 어디에서 누가 사람대접을 해 주고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겠습니까?
지금 적 아 간에는 치열한 사상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혁명가의 운명은 혁명의 길에 나설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말이 있듯이 자기의 정치적 생명을 더럽히지 않고 부끄럽지 않게 최후를 장식하기 위해서는 불요불굴의 혁명정신으로 옥중투쟁을 줄기차게 벌여야 합니다."
(1968년 12월 대남 공작원들과의 담화)
"남조선을 가리켜 법치국가라고 하고, 또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하지만 역시 돈과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는 것이 황금만능주의에 물 젖은 자본주의사회의 법조인입니다.
<유전무죄요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듯이 판사, 변호사의 농간에 의해 사건이 뒤집히는 예가 허다합니다. 이것이 오늘 남조선의 법 실태입니다.
현지 당 지도부는 남조선의 이러한 법 체제의 미비점을 잘 이용해야 합니다. 중대한 사건일수록 법조계, 종교계, 언론계의 조직망을 총동원하여 사회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사면팔방으로 역공을 펼쳐야 합니다. 그래야 법정 싸움에서도 우리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1968년 12월 대남 공작원들과의 담화)
"통일혁명당 지도부가 파괴됨으로써 우리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김종태 동무는 적들의 고문에 의해 옥사했지만 혁명가로서의 지조를 굽히지 않고 탈옥도 시도하고 법정투쟁도 잘했습니다.
김종태 동무가 이렇게 묵비권을 행사하며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기 때문에 그 하부조직들이 살아남게 된 것입니다.
이 동무에게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에 버금가는 대우를 해 주어야 합니다.···그래야 남조선 혁명가들과 조직성원들이 김종태 동무처럼 옥중에서도 혁명적 지조를 끝까지 지킬 수 있습니다." (1968년 12월 3호 청사 부장회의)
"박종철 사건을 계기로 남조선 대공기관이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지하당 조직들은 때를 노치지 말고 안기부와 남영동 대공분실을 고문집단으로 몰아붙여야 합니다.
인권변호사를 앞세우고 언론, 종교단체 등 재야 정치인들을 총 동원하여 여론 공세를 퍼부으며 학살 주범 처벌과 국가보안법 철폐, 공안기구 해체를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공권력을 무력화시키고 정치활동의 자유를 쟁취할 수 있습니다." (1987년 2월 3호청사 확대간부회의)
6) 문예활동
혁명적 문학예술 작품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사람들의 의식을 개조하는 가장 좋은 사상교양 수단으로 된다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의 논리이다.
이로부터 김일성은 남조선의 작가, 예술인들을 포섭, 쟁취하는 공작과 함께 남조선 인민들 속에 더 많은 혁명적 문학예술 작품을 창작, 보급하는 문제에 대해 매우 깊은 관심을 쏟고 있다.
"남조선에서 들여온 영화, 비디오를 보니까 거기에도 재능 있는 작가 예술인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잘 나간다는 몇몇 작가들을 제외하고 절대 다수가 실업자나 다름없는 형편입니다.
이들에게 혁명적 세계관을 심어 주기만 한다면 훌륭한 걸작들이 얼마든지 쏟아져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지하당 조직들은 남조선의 작가 예술인들을 더 많이 포섭하여 혁명가로 만들고 그들이 외롭지 않게 똘똘 뭉쳐서 혁명적 필 봉을 들고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묶어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작가들이 창작한 한편의 시가 천만 사람의 가슴을 감동시키고, 총칼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우리의 혁명적 노래가 적의 심장을 꿰뚫을 수 있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어야 합니다."
(1976년 8월 대남 공작원들과의 담화)
"지금 남조선의 문예인들이 아주 잘 싸우고 있습니다. 그들이 더 높은 혁명적 열의를 가지고 활동할 수 있도록 많은 교양자료를 주고 창작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사실주의에 기초하여 작품을 창작해야 한다니까 그 진수가 뭔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쉽게 말하면 작품 창작을 사실주의에 기초하되 혁명적인 관점을 가지고 혁명에 유리하게 작품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주의에 기초한다고 해서 있는 사실을 그대로 형상 하려 한다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고, 그런 작품을 가지고는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문학예술에도 허구라는 것이 있고, 또 작가들의 기교에 따라서 얼마든지 과장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심금을 울릴 수 있어야 합니다.
지하당 조직들은 남조선의 작가 예술인들이 사실주의에 구애되지 않고 대담하게 혁명적 기교를 발휘할 수 있도록 잘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1976년 8월 대남 공작원들과의 담화)
"남조선 인민들의 머릿속에 박혀있는 숭 미 사대주의 사상을 뿌리뽑고 그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기 위해서는 작가 예술인들로 하여금 미 제국주의의 침략적 본성과 야수적 만행, 그리고 비인간적인 각종 범죄 사실을 폭로하는 작품들을 많이 창작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작가들이 창작한 작품이 잘 팔리지 않을 경우에는 지하당 조직들이 책임지고 팔아주고 대대적으로 뿌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실망하지 않고 더 좋은 작품을 창작 할 수 있습니다." (1976년 8월 대남 공작원들과의 단화)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도 만들고 노래도 짓고, 좋은 그림도 많이 그리도록 해야 합니다.···어떤 동무들은 돈이 많이 든다고 난색을 표한다는데 우리가 항일 빨찌산 투쟁을 할 때, 돈이 있어서 <피바다> 극본을 쓰고 연극 공연을 했겠습니까?···그러나 지금은 북반부의 강력한 사회주의 혁명기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무서워 주저하겠습니까?
문제는 우리 혁명가들의 열정입니다. 돈이 들면 얼마나 들겠습니까? 돈 드는 거 아까워하지 말고 대담하게 일을 벌려야 합니다. 남조선 인민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고 혁명 투쟁에 동원할 수만 있다면 억만 금이 들어도 해야 합니다." (1976년 8월 대남 공작원들과의 담화)
"영화나 소설 같은 작품을 창작하는 것도 남조선의 작가들에게만 맡겨두면 안됩니다. 장편소설을 하나 쓸려고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많은 작품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도 우리의 작가, 예술인들을 많이 동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책도 남조선에서 찍은 것처럼 출판사와 작가 이름을 붙여서 우리가 만들어서 남조선으로 보내주어야 합니다. 문제는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많이 창작해서 보급하는 것입니다." (1976년 8월 대남 담당요원들과 의 담화)
7) 교포공작
"우리 공작원들이 남조선에 내려갈 때, 가지고 가는 카메라, 시계, 라이타 같은 장비품을 어디에서 구입해 들여옵니까? ···그런 것도 머리를 잘 써서 장비담당 부서와 긴밀하게 연계를 가지고 풀어나가면 얼마나 좋습니까? 해외 교포들 가운데에는 장사하는 사람도 많다는데 우리가 그들의 물건을 많이 사주면 필요한 장비도 쉽게 구할 수 있고 그 교포들을 우리편으로 만들기도 쉬울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일본에서 신발공장을 경영하는 한 재일 교포가 일본정부의 민족 차별 정책으로 말미암아 공장 문을 닫을 형편에 처해 있다는 보고를 받고 내가 그 신발을 몽땅 사서 평양으로 보내라고 했는데 그 후 그 재일 교포는 완전히 우리 사람이 됐습니다." (1976년 2월 대남 공작 담당요원들과 의 담화)
"지금 해외에 나가 사는 교포들은 그 대부분이 사업하다 실패를 했다 든 가 아니면 정치적인 관계로 도피했다 든 가? ···여하튼 남조선에서는 살기가 불편하기 때문에 고향을 등지고 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는 권력 싸움에서 밀려난 전직 고관들도 있고, 예비역 장성, 실업가, 교인들도 많은데 일부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자리가 없고 먹고살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얼마나 좋은 먹이 감입니까?···이들에게 미끼를 잘 던지기만 하면 두 팔을 걷고 우리를 따라올 것입니다."
(1976년 2월 대남 공작 담당요원들과의 담화)
"해외로 이민 간 교포들도 관심의 대상입니다. 그들이 오죽했으면 고향을 등지고 이민을 갔겠습니까? ···이민을 간 교포들 중에도 성공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절대다수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절망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자기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으며 형편이 어려운 사람일수록 현 정권에 대해 이를 갈고 있습니다. 이런 교포들을 잘 포섭해서 묶어 세우기만 한다면 강력한 혁명역량으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1976년 2월 대남 공작 담당요원들과 의 담화)
"해외교포들 속에서 조직을 결성할 때에도 북과 연계되지 않고 교포들 자체로 묶은 조직인 것처럼 명칭을 잘 위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남조선의 정보망에 걸리지 않고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그리고 활동력 있고 천부적인 기질을 가진 대상들을 잘 훈련시켜 직업적 혁명가로 키워야 합니다. 해외 교포들은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세계 각국을 마음대로 내왕할 수 있는데 활동조건이 얼마나 유리합니까?" (1976년 2월 대남 공작 담당요원들과 의 담화)
8) 해외 공작
"국제혁명 역량을 강화하자면 합법적인 외교 활동 못지 않게 해외공작을 잘 해야 합니다. 지금 제3세계 나라들 가운데에는 반미 성향을 가진 나라들도 있고,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나라들도 있습니다.
또 친미 정권을 반대하는 혁명을 준비하고 있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이런 나라들에 파고 들어가 무기 자금도 지원해 주면서 해외공작 거점을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1969년 11월, 해외공작 담당요원들 과 의 담화)
"쿠바혁명이 승리한 결과 우리의 해외공작 활동 무대가 넓어졌습니다. 지금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는 쿠바혁명의 영향을 받아 각종 좌익단체들의 주도 하에 민족해방,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운동단체들이 매우 어려운 조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모스크바의 루뭄바 대학을 거처 우리한테 와서 교육 훈련을 받은 지도자들도 많은데, 이제는 이들이 자기나라에 훈련 교관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유리한 조건입니까 ? 각 나라의 실정을 고려하여 적극 지원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1969년 11월, 해외공작 담당요원들 과 의 담화)
"체 게바라는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승리에로 이끈 국제적인 혁명가이며 라틴아메리카의 영웅입니다.
그는 쿠바 혁명정부의 요직도 마다하고 콜롬비아로 가서 콜롬비아 혁명을 위해 무장혁명군을 조직하고 투쟁하다 희생됐습니다.
그만큼 체 게바라가 영도하던 무장혁명군은 그 어느 나라 무장단체 보다도 혁명성이 강하고 견결한 투쟁조직입니다. 이런 조직 단체들은 혁명 동지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콜롬비아는 지리적 위치도 아주 좋습니다. 이런 곳에다 공작거점을 공고하게 구축해야 합니다." (1969년 11월 상 동)
"반미 민족해방 운동을 벌리고 있는 무장단체와 혁명 조직들은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도 많습니다. 팔레스타인 민족해방기구를 비롯한 수많은 혁명조직들이 우리나라 혁명 경험을 배우기 위하여 평양으로 찾아오고 있으며 교육을 의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교육 훈련 시설을 더 늘리고 이들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중동지역에도 필요한 곳곳에 훈련 교관들을 파견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혁명의 국제적 연대성을 강화하고 지지자, 동정자 대열을 확대해 나갈 수 있습니다." (1969년 11월 상 동)
9) 범민연운동
"지금 남조선에서는 수많은 진보적 민주인사들이 각종 재야단체에 결속되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빨리 북과 남, 해외의 통일애국역량을 총 망라하는 전민족 통일전선을 형성해야 합니다.
전민족 통일전선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물론 우리가 주동적으로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남조선 혁명조직이 먼저 재야단체의 이름으로 발기하도록 하고 거기에 북과 해외운동 단체들이 호응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1990년 5월 3호청사 확대간부회의)
"남조선 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선봉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그 실체는 뭐니 뭐니해도 역시 청년학생들입니다.
이번 8·15에는 2차 범민족대회와 함께 북과 남 해외 청년학생들의 통일대축전 행사도 거행된다고 하는 데 청년학생들의 3자 연합조직도 범민련 산하의 범민족 청년학생연합이라는 이름으로 거창하게 만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범민련과 마찬가지로 범청학련에도 공동사무국을 설치 운영한다면 청년학생들의 통일운동이 더욱 활발해질 수 있습니다." (1991년 8월 3호청사 부장회의)
"적들의 탄압으로부터 혁명역량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범민련 남측본부와 한총련에 대한 이적 규정을 철회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남조선 당국자들을 사대 매국적 반통일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파 쇼 폭압기구 해체 투쟁과 함께 범민련을 통일 애국단체로 부각시키는 합법화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나가야 합니다."
(1993년 8월 3호청사 확대회의)
"범민련 해외본부도 외형상 위력 있는 방대한 조직인 것처럼 위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해외 각 국에 널려있는 전직 고관들을 많이 포섭하여 각종 명칭의 지역별 교포단체들을 조직하고 그들에게 감투를 하나 씩 씌워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눈부시게 활동하고 있는 것처럼 널리 선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범민련의 위상을 높일 수 있고, 또 앞으로 만약에 남북 정당 사회단체연석회의 같은 것이 열리게 될 경우에는 그들이 각 단체의 대표 자격을 가지고 참석할 수 있습니다." (1993년 8월 3호청사 확대회의)
10) 비밀 단속
"내가 지도핵심을 육성하라고 했더니 연락부에서는 호랑이를 키웠습니다. 지도핵심 배신자가 나타난 겁니다.
기자회견 실황을 보니까 이번 거문도 사건은 어떤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계획된 배신행위였습니다.
영웅칭호까지 받은 놈이 그렇게 배신을 했으니 이제 누구를 믿고 공작을 하겠습니까···? 연락부장은 그자를 만난 지 얼마 안됐으니까 몰랐다 치고, 지도원들은 10년 동안 얼굴을 맞대고 있으면서 그런 요소도 발견하지 못하고 뭘 하고 있었습니까?
동무들은 그저 공작경험이 많고 훈련을 잘 하는 영웅이라고 해서 무원칙하게 싸고도는 것 같은데 그런 머리를 가지고서는 혁명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일체 공작을 중단하시오···! 그리고 전반적인 사상 검토를 하고 공작원 대열을 정리하도록 하지오." (1976년 9월 3호 청사 확대간부회의)
"일개 공작원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비밀을 알 수 있습니까?···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까? 필요 없는 비밀은 알려고도 하지 말아야 하며 필요 없는 사람에게는 비밀을 알려주지도 말아야 한다는 비밀사업 원칙이 있지 않습니까?
비밀단속을 그따위로 해 가지고 무슨 혁명을 하겠다는 겁니까?···
각 초대소에 비치된 비밀 자료를 당장 회수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초대소에 드나드는 의사, 운전수, 공급 지도원, 식모들도 모두 비밀단속을 철저히 하도록 조치해야 합니다." (1976년 9월 3호 청사 확대간부회의)
"다시는 그런 배신자가 나타나지 못하도록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도 보복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시간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 자가 알고 있는 비밀을 정보부에 다 털어놓은 다음에는 한 인간에 대한 보복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연락부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베신자의 말로가 이런 것이라는 보여줘야 합니다." ( 1976년 11월 3호청사 확대간부회의 )
11) 결정적 시기
결정적 시기는 남조선혁명의 전 전략적 단계에서 단 한 번 밖에 있을 수 없는 혁명의 마지막 단계라는 것이 북한의 논리이다.
때문에 조국통일의 혁명적 대 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결정적 시기를 적극 조성하고 그 계기를 적시에 포착해야 하며, 일단 계기가 포착된 다음에는 지체 없이 총 공세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 김일성의 전략사상이다.
이로부터 김일성은 결정적 시기의 조성과 적시 포착, 이용문제에 대해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결정적 시기는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혁명정세는 오직 혁명가들의 끈질긴 노력에 의해 성숙되게 됩니다.
혁명의 객관적 정세가 아무리 성숙되었다 하더라도 혁명가들이 주동적으로 조성하지 않으면 결정적 시기는 절대로 오지 않습니다.
혁명적 대 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각종 형태의 대중투쟁을 적극 조직 전개하여 적들의 강경 탄압을 유도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위도중 경찰에 의해 살해된 것처럼 위장하여 자해공작을 할 필요도 있습니다. 시위군중들이 동료들의 피를 보게되면 더 격렬하게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1976년 8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혁명의 전 전략적 단계에서 결정적 시기는 단 한 번 밖에 오지 않습니다. 결정적 시기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시기 포착을 잘해야 합니다.
결정적 시기가 조성되었다 해도 그 시기를 포착하지 못하면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4·19 때의 교훈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가 좋은 기회를 놓쳤던 것처럼 평양에 앉아서 무전으로 보고나 받아 가지고서는 서울에서 일어나는 결정적 시기를 제때에 포착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혁명정세를 자체로 분석 평가하고 스스로 전략전술을 작성할 수 있는 노숙한 혁명가들을 파견하여 현지당 지도부를 시급히 꾸려야 합니다.
조선혁명을 모스크바에서 지도할 수 없듯이 평양에 앉아서 남조선혁명을 지도한다는 것은 혁명의 원리에도 맞지 않습니다." (1974년 1월 대남 담당요원들과 의 담화)
"해외에 나갔던 전 정보부장 이 후락이 지금 충무호텔 2층 특실에서 휴양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는데 연락부에서 그 자를 평양으로 데려 오도록 작전을 한번 해보시오,
지금은 공직에서 물러난 상태니까 경호원도 별로 없을 것이고, 장소도 바닷가니까 감쪽같이 잡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그리고 상대가 보통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혀를 깨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해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강력 마취제를 써서라도 내 앞에 데려오기만 하면 됩니다." (1974년 4월 3호청사 간부회의)
"년 초부터 박정희가 긴급조치를 연발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강한 탄압에 의거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유신체제를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결정적 시기가 박두했다는 징조입니다.
우리는 유신체제가 더 굳어지기 전에 선손을 써야 합니다.···남조선에서 대통령이 출두하는 행사 일람표를 보니까 해마다 8·15 광복절 경축 파-티가 경회루에서 벌어지는데 매우 흥미 있는 곳입니다.
이번에는 68년 청와대 육박 당시의 교훈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빈틈없이 잘 준비해야 합니다."
(1974년 4월 3호청사 부장회의)
"지금 남조선 정세가 매우 흥미 있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동아일보 광고 해약사태는 결정적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징조입니다.
동아일보에 대한 구제운동을 벌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세를 더욱 격화시키기 위해서는 이 사태가 장기화 되도록 기름을 치고 부채질을 해야 합니다.
현지 당 지도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광고주들에게 공갈, 협박을 해서라도 광고 해약 자들이 더 늘어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번 동아일보 사태를 잘 이용하기만 하면 결정적 시기가 성큼 다가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1974년 12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결정적 시기가 포착되면 지체 없이 총 공격을 개시해야 합니다. 전국적인 총파업과 동시에 전략적 요충지대 곳곳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켜 전신 전화국, 변전소, 방송국 등 중요 공공시설들을 점거하는 동시에 단전과 함께 통신 교통망을 마비시키고 임시혁명정부의 이름으로 북에 지원을 요청하는 전파를 날려야 합니다.
그래야 남과 북의 전략적 배합으로 혁명적 대 사변을 주동적으로 앞당길 수 있습니다." (1974년 12월 대남 공작원들과 의 담화)
"10·26사태는 결정적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징조입니다. 박정희가 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은 권력층 내부의 모순과 갈등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첨예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적들은 지금 계엄상태를 선포해 놓고 서로 물고 뜯고 하고있는데 이것이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연락부에서는 이 사태가 수습되기 전에 선 손을 써야 합니다. 남조선의 모든 혁명역량을 총 동원하여 전민 봉기를 일으킬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해야 합니다." (1979년 11월 3호청사 부장회의)
"12·12사태는 미제의 조종 하에 신 군부가 일으킨 군사 쿠테타입니다. 계엄사령관 관저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남조선 정세가 그만큼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군 수뇌부가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연락부와 인민무력부에서는 언제든지 신호 만 떨어지면 즉각 행동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24시간 무휴상태로 들어가야 합니다." (1979년 12월 20일 중앙당 확대간부회의)
"남조선의 대통령이 각료들을 이끌고 동남아를 순방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작전부에서 결사대를 파견 해 보겠다고 했다는데 절대로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틀림없이 해야 합니다. 버-마가 허술한 나라라고 해서 너무 쉽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방문 일정에 따라 사전 답사도 해 보고 빈틈없이 잘 준비를 해서 감쪽같이 해 치워야 합니다. 만약 이번 작전에서 성공하게만 된다면 결정적 시기가 성큼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1983년 9월 3호청사 부장회의)
"전두환이가 드디어 백기를 들었습니다. 4·13 호헌이요 뭐요 하다가 노태우의 6·29 선언이 나왔다는 것은 6·10 항쟁에 겁울 먹은 전두환 정권이 항복했다는 것을 뜻 하는 것입니다.
현지 당 지도부는 앞으로 있게될 대통령 선거에 대비해서 우리의 민주투사들을 상도동과 동교동 쪽으로 접근시키고 김영삼과 김대중으로부터 인정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장차 그들의 후광을 업고 제도권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 다." (1987년 7월 3호청사 부장회의)
"서울 올림픽이 성공하게 된다면 그만큼 내외적 환경이 불리하게 됩니다···올림픽을 파탄시킬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불가능 할 경우에는 최소한 흠집이라도 많이 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남조선 도처에서 폭발사고를 일으킨다든가 해서 각 국 선수단과 관광객들이 남조선에 안심하고 들어갈 수 없도록 공포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1987년 7월 3호청사 부장회의)
Ⅳ. 결 론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김일성은 혁명의 매 단계, 매 시기마다 각 분야에 걸쳐 공식 절차를 통한 정책결정 외에도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 <비밀 교시>를 통하여 모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김일성 비밀교시는 그들이 공개해서는 안될 그런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서 어디에 가서도 그 문헌적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북한에서는 국가 위에 당이 군림해 있고, 김일성의 교시가 곧 법으로 되는 것만큼, 김일성의 교시가 모든 사업과 행동의 지침으로 될 뿐만 아니라 절대성, 무조건성의 원칙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관철되고 있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에는 물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도 재론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 노동당의 모든 정책과 노선, 특히 대남 혁명전략에 대해 연구 할 때, 그것은 응당 김일성의 비밀교시를 잣대로 하여 대공 전술적 차원에서 예리하게 분석되어야 한다.
흔히 일부 전문가들 속에서는 과거의 것은 낡은 자료라 하면서 덮어놓고 최근의 자료애만 치중하는 편향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 역시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속성을 모르는데서 비롯되는 무지의 표현이다.
물론 최근 김정일의 새로운 비밀교시 자료가 있다면 그 전술적 가치가 기대될 수 있으며 우리는 응당한 관심을 돌려야 한다.
그러나 남조선 혁명과 조국통일에 관한 전략 전술의 기본 틀은 이미 김일성의 생존시에 형성된 것이라는 점, 결코 소흘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더욱이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다방면적인 남북 접촉과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북한의 의도를 정밀 진단할 수 있는 그 유일한 열쇠가 바로 김일성의 비밀교시라는 점, 우리는 깊이 인식하고 앞으로는 <김일성 비밀교시> 뿐만 아니라 김정일의 <비밀교시> 자료를 발굴하는 작업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정일의 군정 간부회의 어록
본 어록은 일본「문예춘추」2000년 12월 호(상, 중, 하)에 게재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임.
ꡒ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다는 소식이 퍼지자 세계 인민들 속에서 큰 파문이 일고 있다.
국주의자들의 고립 압살책동과 경제 봉쇄, 그리고 수년 간 계속된 자연재해로 인해 난관을 겪으면서도 우리가 100% 스스로의 힘을 가지고「광명성 1호」를 발사했다는 것은 우리 식 사회주의의 커다란 승리라 할 수 있다.
이번에 발사한 최초의「광명성 1호」는 자력갱생 정신의 산물이다. 우리의 힘과 기술을 확고히 믿고 앞으로는 이것보다 더 위력 있는 인공지구위성을 만들어 올려야 한다.
만일 우리들이 조그마한 성과에 자만하지 않고 그 기세와 기백으로 돌진해 나간다면 우리는 언제나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불가능을 가능케 하며 화를 복으로 바꾸어 강성대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애로와 난관이라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강성대국의 최초의 포성은 이미 울려 퍼졌다. 이제 강성대국의 두 뻔째, 세 번째 포성이 잇따라 울려 퍼지도록 해야 한다.(1999년 2월 4일 당, 정 간부회의)
ꡒ우리는 세계 반동의 원흉인 미제와 그 하수인인 남조선 반동과 직접 대치하여 혁명을 하고 있으나 아직도 나라의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우리혁명의 장래에는 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여러 가지 난관과 장애가 가로 놓여 있으며 미제와 남조선 반동은 우리 공화국에 대한 침략과 전쟁책동을 한층 더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온갖 난관과 시련을 극복해 가면서 사회주의 위업을 강고히 옹호 고수하며 힘차게 전진해 나가면서 결정적으로 당과 함께 인민군대를 강화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1999년 2월 4일 군, 정 간부회의)
ꡒ금창리 건설을 한층 더 진척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금창리를 더욱 강화시키지 않고서는 사회주의 위업 수행과 군사력 강화는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을 금창리 건설에 집중해야 한다. 인민군대를 강화하지 않으면 이미 쟁취한 혁명의 전취물을 끝까지 지켜나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건설도 추진시킬 수 없고 나라의 통일도 성취할 수 없다.ꡓ( 상 동, 간부회의)
ꡒ최근 제국주의자들은 반 사회주의 운동을 한층 더 악랄하게 전개하면서 부르주아 사상을 퍼뜨리려 하고 있으며 남조선 당국자들은 저부터 꿈꾸어 오던 흡수통일을 꾀하면서 교류의 간판 아래 공화국 북반부에 부르주아 자유화 바람을 불어넣으려 하고 있다.
제국주의자들이 불어넣으려는 부르주아 자유화 바람에 제일 먼저 오염되는 사람들은 청년들이다.
청년들이 부르주아 자유화 바람에 오염되면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잃어버리게 되며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되고 마지막에는 자기의 조국과 인민을 배반하는 길로 빠져버리고 만다.
우리는 청년들 가운데서 당과 수령님에 대한 충실성 교육을 주안점으로 틀어잡고 주체사상 교육을 한층 더 강화함으로써 썩어빠진 부르주아 사상이 파고 들 수 있는 그 어떤 사소한 틈새도 주어서는 안 된다. 당 조직과 사로청 조직들은 청년들 속에 깊이 파고들어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책을 읽고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 잘 파악하고 대상의 준비정도와 특성에 맞게 교육사업을 짜고 들어야 한다. 청년들이 부화 방탕한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심리에 맞는 혁명적인 생활적인 노래를 많이 창작할 필요가 있다. (상 동, 간부회의)
ꡒ자주성이 없게되면 나라가 망한다. 동구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대국이 말하는 그대로 하다가 망해 버렸다.(중략)
일찍이 대국주의자들은 우리나라에 바르샤와 조약기구와 코메콘에 들어오라고 압력을 가해왔지만 수령님은 들어가지 않고 철저히 독자성을 고수하시었다. 바르샤와 조약기구와 코메콘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 옳았던 것이다. (상 동, 간부회의)
ꡒ인간은 청년시절에 어떤 교육을 받는가 하는데 따라서 혁명가로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청년들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주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청년들은 진취적인 기상에 넘치는 정의감이 강하기 때문에 좋은 영향을 받게되면 그것을 잘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는 청년들을 잘 인도해 주면서 당과 수령님께 무한히 충실한 참된 청년 전위로 키워야 한다. 동구 제국들은 청년들에 대한 교육을 올바르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적지 않은 청년들이 제국주의 반동들에게 농락 당하여 반 사회주의 책동에 휘말리게 되었던 것이다.
일부 국가에는 청년들이 자본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소설도 혁명적인 것은 안 보고 부화 방탕한 것들만 보고 있다. (상 동 당정 간부회의)
ꡒ사회주의가 붕괴된 결과 구 소련 과 동구 제국의 인민들에게 가져다 준 것은 정치적 무권리와 빈궁뿐이다.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써의 당당한 권리를 행사하면서 생활하던 그들이 사회적으로 버림을 받고 생활의 밑바닥을 헤매고 있다. 누구도 그들의 운명을 지켜주고 돌봐주려고 하지 않는다.
돈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지식이 있고 나라와 인민을 위하여 공로를 세웠다 하더라도 가을 낙엽 같은 운명을 면할 수가 없다. 위대한 조국해방 전쟁시기에 피를 흘리며 싸웠던 사람들이 그처럼 귀중하게 여기며 소중하게 보관해 오던 훈장과 메달들을 얼마의 돈을 얻기 위해 팔고 있으며 길가에 앉아 걸식하고 있다. 사회주의 조국의 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공적을 쌓은 과학자, 기술자들이 먹고살기 위하여 타국으로 나가고 있다. 웃음과 행복 만 알고 있으면 되는 어린이들이 구두 닦기 통을 메고 길모퉁이에 줄을 잇고 있고 자동차 청소부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무상치료 제도의 혜택 가운데서 병 치료의 걱정을 모르고 살아오던 사람들이 병이 걸려도 돈이 없어 병원에 갈 수가 없어서 약 한 봉지도 써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는 것이 보통이다.
상점과 식당, 극장과 영화관에 들어가면 자기의 것, 민족 고유의 풍습과 정서라는 것은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본주의 복귀로 처참하게 된 자기들의 처우와 생활 상황을 보고, 지금에 와서야 겨우 어느 사회가 더 좋았는가를 터득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에 대한 동경과 환상의 결과가 이처럼 가혹하다는 것을 생각도 못했던 것이 그들이었다.ꡓ (1999년 6월 20일 군, 정 간부회의)
ꡒ드디어 인민대중은 각성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두려워서 부르주아 정치가들은 「자유」를 소리낼 수 있는 데까지 외치고 있다.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먹고 싶으면 먹고, 놀고싶으면 놀고, 춤추고 싶으면 춤을 출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가 얼마나 자유로운 세상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시오 일할 곳이 어디 있으며, 먹을 것이 어디 있는가가 ! 일 할 곳이 없는 사람들, 굶어 쓸어져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수가 있으며 마은 내키는 대로 쉴 수가 있겠는가 !
그것은 제국주의자들이 인민을 자본주의 올가미 속으로 더욱 단단하게 묶어두기 위한 독을 지닌 감언에 지나지 않는다.
인민의 진정한 삶과 행복은 오직 사회주의 뿐이다 그것이 진리이다.(중략)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은 스스로의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상 동, 간부회의)
ꡒ20세기가 끝나가려 하고 있다. 오늘 날 진보적 인류는 다가오는 신세기에 지배와 예속이 없고, 침략과 약탈이 없으며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계에서 살기를 염원하고 있으며 그 실현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낡은 세력이 있다. 그들이 바로 제국주의자들이다.
제국주의자들은 신 세기에도 전 세계를 자기들의 손아귀에 넣고 마음대로 하려는 망상 하에 군사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이 공군력 강화에 크게 억점을 두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다. 미 국방성이 금년 3월부터 6월에 걸쳐서 행한 유고슬라비아 공습 작전의 평가작업을 끝내고 그 결과에 근거해서 더욱 공군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하는 안을 의회에 제출했다고 한다.(중략)
미국의 공군력 강화는 어제오늘에 와서 제기된 것이 아니다. 미국이 조선 전쟁과 베트남 전쟁, 걸프전쟁을 위시하여 대소 수많은 전쟁을 공군력에 근거하여 수행했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미국은 해외 침략을 성과적으로 감행하기 위하여 언제나 공군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중략)
미국이 강력한 공군력에 의거해서 최초로 공격하려 하고 있는 대상은 우리나라 밖에는 없다. 금번 미국이 전개한 유고 공습은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시험적인 전쟁이었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이 우리나라를 공군력으로 공격해서 침략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별 없는 놈들의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미국이 하늘로부터 들어오더라도, 바다로부터 들어오더라도 섬멸적 타격을 가할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유럽 주둔 미제 침략군을 위시한 NATO의 전략무기(미사일)는 우리 공화국으로 조준을 맞추고 있다. 그들은 조선반도가 제2의「유고슬라비아」로 될 수 있다고 폭언을 토하고 있을 정도이다. (상 동, 간부회의)
ꡒ냉전 시대에 미국은 공산주의 위협을 요란하게 떠들면서 서방세계를 자기들에게 종속시킬 수가 있었다. 그러나 냉전기가 종식되면서 미국은 그러한 구실을 잃게 되었다.
한편 세계의 다극화를 주장하는 대열이 증가하고 있다.․․․이로부터 미국은 세계를 군사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술책을 잇따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미사일 방어체계」(TMD - 전역미사일 방위구상)이다.
원래「미사일 방어체계」는 냉전기의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미사일 방어체계는 1983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레이건이 제출했던「스타워즈 걔획」(전략방위구상)의 복사판이다.
황당무계한 이 계획은 불과 몇 년 사이에 90억 달러를 소비한 후 보류된 채 세상에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미국이 이 계획을 추진한 진짜 의도는 구 소련에 과도한 군사비 부담을 지게하고 그 나라의 지도부를 압박하여 경제발전에 커다란 지장을 주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1991년에 미국은「스타워즈 계획」을 보다 현실적 규모로 축소하여 93년에는 「전략방위 구상」기구를「탄도미사일 방위기구」로 정식 개편했다. 이렇게 하여 미사일 방위체계는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ꡓ (상 동, 간부회의)
ꡒ여기에 따라 이 지역은 세계에서 전략무기 배비의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으로 가장 위험한 화약고가 되었다. 조선반도는 언제 폭발할지 알 수 없는 시한폭탄 위에 앉아 있는 것과 동일하다.
냉전시대에 미국은 미국 본토와 세계 각지에 전개한 전략무기가 주가 되어 소련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해 왔다. 그렇다면 냉전이 끝났고 소연방이 해체된 지금, 누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인가?․․․냉전이 끝난 후 미제는 소련의 위협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국간에는 호상 간에 전략무기의 조준을 맞추지 않기로, 위협도 주지 않기로, 더욱이 핵무기의 일부를 철폐한다고 하는 합의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미제가 그러한 방대한 전략무기를 유지할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하는 것인가?․․․결론부터 말한다면 전략무기의 표적은 우리 공화국이다. (상 동, 군․정 간부회의)
ꡒ그들은 우리가 사정거리가 더 긴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던가, 미사일 발사시험을 또 하려 하고 있다던가 말이 격해지면서 우리의 미사일 위협을 어느 때보다도 떠들썩하게 법석을 떨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그림자에 놀란 속이 검은자들의 광란적인 발작에 지나지 않는다.
미제의 모든 전략무기와 장비에 설치되어 있는 전자두뇌에는 공화국 북반부를 공격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입력되어 있다. 이것들은 버튼만 누르면 언제든지 공화국으로 발사될 수 있다.(중략)
미제는 그것도 부족하여 우주에 수천 개의 스파이 위성을 띄워놓고 우리 공화국의 공격 대상물을 상시 감시, 추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우리 미사일 위협을 구실로「전역미사일방위체계」까지 개발해서 배치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전략무기가 우리 공화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실증해 주는 것이다. (상 동, 군정 간부회의)
ꡒ속담에 손님도 3일 간 머물면 고맙지 않다고 한다. 하물며 태평양을 건너서 미국 군대가 몇 년인가 !? 반세기를 훨씬 지났는데 남의 거실에 들어앉아 있으니 이 이상으로 파렴치한 불청객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
남조선에서 미제 침략군 놈들이 감행한 야수적 만행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미제 침략군 강도 놈들은 남조선 인민을 짐승 사냥하듯이 죽이며 여성을 능욕하고 물자를 강탈했다.
「앵글로색슨 족 우월주의」를 제창하는 미제는 우리민족을 열등민족, 하등민족으로 취급했다. 이런 민족적 망신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 (상 동, 군정 간부회의)
ꡒ우리나라의 통일과 민족적 번영을 위하여 조선반도의 평화와 아시아, 세계평화와 안전을 위하여 미제 침략군은 남조선으로부터 자체 없이 나가야만 한다.
남조선으로부터 미군을 철수시키는 일은 미국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다. 지금 미국은 해외 주둔 미군 유지비로 막대한 자금을 소비하고 있다.
남조선 인민은 영토 내에 침략군을 두고 있어서는 재난과 고통, 불행을 면할 수 없으며 자주 민주 통일의 염원도 실현될 수 없다는 현실적 자각으로부터 출발하여 미군과 그 군사기지 철수, 철폐투쟁을 힘차게 전개하고 있다. (상 동, 군정 간부회의)
"미제는 우리 공화국에 대해서는 평화적인 인공위성 발사도 미사일 실험이라고 무리한 난제를 걸어오면서도 일본이나 남조선 괴뢰의 위험한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개발은 극 력 덮어 감추고 있다. 미제의 묵인 아래 일본이 잠재적 핵무기 대국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일본은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기술, 설비, 자재를 모두 갖추고 있다. 플루토늄만 하더라도 핵무기 4천 발 이상을 만들 수 있는 방대한 양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최근 또 해외로부터 플루토늄을 가져오고 있다. 2001년경에는 핵무기 6만 발을 제조할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전 세계 여론이 경악을 나타내고 있지만, 미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우리 공화국에 대해서는 불과 몇 그램밖에 되지 않는 미량의 플루토늄 의혹을 트집잡는 미국이 플루토늄 몇 톤씩 가지고 있는 일본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상 동, 군정 간부회의)
"일본 자위대는 미제가 제공한 미사일을 위시한 전략무기 만이 아니고 자기들이 개발한 많은 전략 전술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다.
일본의 미사일 개발은 우주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급속히 추진되고 있다. 일본이 이미 인공위성을 수없이 쏘아 올렸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재론 할 필요도 없다.
발사에 이용된 H-2형 로켓은 핵탄두를 운반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버금가는 것이다. 우리 공화국의 최초의 인공위성에 대해서는 미친 듯이 떠들어대던 미제가 일본의 인공위성 발사에는 어째서 입을 다물고 있는가!?
일본의 침략무력이 가지고 있는 미사일은 모두 우리 공화국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 일본 반동들이 북의 미사일 발사시험을 막는다고 하면서 우리의 기지와 시설에 대한 공중 폭격의 음모를 꾸민 사실로부터 여실히 폭로되고 있다." (상 동, 군정 간부회의)
"우리 인민은 최초의 인공지구위성 「광명성 1호」를 궤도상으로 쏘아 올렸다는 것으로써 주체조선의 강력한 위력을 전 세계에 남김없이 과시했다.
「광명성 1호」는 세계에서 가장 위력 있는 인공지구위성이며, 세계사에서 처음 으로 탄생한 위성이다.
우리들은 미제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서도 사회주의와 조국통일을 위해서도 「광명성 1호」뿐만 아니고 2호, 3호, 4호 등 더욱 위력 있는 위성을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주체조선이 세계에서 최대 강국이 될 수 있다. ․․․
그들이 우리나라의 지하 핵 시설의혹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문제시하면서 소동을 벌리고 있는 것도 전쟁 도발의 구실을 준비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ꡓ (상 동, 군정 간부회의)
"우리는 다시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그 불꽃이 이 지역에만 한정될 수 없다고 본다.
만약 조선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미국만이 아니고 그 총알받이로 나선 남조선 괴뢰군, 그리고 미군에 기지를 제공하기도 하고, 심부름을 하고 있는 일본을 위시하여 모든 적대세력 모두가 공격 목표가 될 것이다.
미국과 일본, 남조선 괴뢰는 우리들에 대한 부당한 핵 소동과 미사일 소동을 즉각 중지해야 하며, 치명적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리를 위협하는 불장난을 거둬치워야 할 것이다." (상 동, 군정 간부회의)
"우리는 조국의 부강 발전과 민족 최대의 숙명이며, 염원인 조국통일을 위해서도 군사를 중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다와, 하늘과 육지, 그 어디를 막론하고 침략자가 도발해 온다면 단숨에 때려눕힐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다시는 서해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금창리를 위시한 우리나라의 국방시설에서 기본 동력으로 되고 있는 자강도의 건설을 최종단계로 더욱 더 추진시켜야 하겠다. 그리고 봉화대와 마양도, 신포의 미사일기지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공고하게 다져나가야 하겠다." (1999년 10월 3일, 군정 간부회의)
"국민의 정부를 표방하고 있는 김대중 정권은 한국 민의 정권이 아니고 일본 쪽의 소임을 맡고 있는 사대매국정권이다.
그의 1년 8개월은 이 나라 역사에 일찍이 없었던 범죄적인 친일 역적 행위로 기록되고 있다.
김대중 역도는 작년 2월에 거행한 대통령 취임식에서 자기의 첫 의례 행사를 그 곳에 참석한 일본 전 총리인 나까소네와 만나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그는 그 자리에서 과거 일본 군국주의 죄악의 상징인 일본 왕을 천황이라 치켜세우면서 천황이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생각이라고 아양을 떨면서, 청와대에서 일본의 특사를 만난 자리에서도 다시 일본 천황의 방한은 한일관계 진전에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라고 숙적의 방한을 구걸했다. (중략)
잇따라 김대중 김종필 친일 역도들은 일본 총리 오부치를 제주도로 초청해서 일본 왕의 방한을 조기에 실현시키기로 합의했다.
김대중은 일본 왕 앞에서 「양국의 역사 중에 얼마간 비우호적인 시기가 있었으나 그것 때문에 한일의 오랜 우호관계에 손상을 주는 것은 선조에 대해서도 자손에 대해서도 면목이 없는 일」이라고 역사를 왜곡하였고 우리 선조를 모욕하면서 일제의 죄상을 추궁하지 않았다. 천 추에 용납할 수 없는 역적질을 했다." (상 동, 군정 간부회의)
"수령님은 김대중은 민족주의자인 동시에 애국주의자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대해서, 그리고 수령님의 사랑과 배려, 동지적 신뢰에 대해서 금일의 김대중은 배신으로 답하고 있다.
결국은 그 놈이 그놈인 격이다. 김대중은 야당 시절 민주화를 외치며 접근했으면서도 신뢰와 의리를 모두 버리고 반 사회주의와 반 통일책동에 미친 듯이 뛰쳐나가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을 두목으로 하고 있는 남조선 당국자들은 동포와 민족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또한 조국통일을 위해서라는 구실의 모터아래서 갖가지 형태의 「햇볕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 공화국을 현혹시키기 위한 기만정책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남북회담의 최대의 목적은 금수산 궁전에 참배하는 것이다. 수령님의 유체가 안치되어 있는 금수산으로 가서 경의를 표하고 참배하게 되면 김대중을 믿고 함께 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상 동, 군정 간부회의)
당의 유일 사상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1.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사상으로 온 사회를 일색 화하기 위하여 몸바쳐 투쟁하여야 한다.
수령님의 혁명 사상으로 온 사회를 일색 화하는 것은 우리 당의 최고 강령이며 당의 유일 사상 체계를 세우는 사업의 새로운 높은 단계이다.
1) 당의 유일 사상 체계를 세우는 사업을 끊임없이 심화시키며 대를 이어 계속해 나가야 한다.
2)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창건하신 우리 당을 영원히 영광스러운 김일성 동지의 당으로 강화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3)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세우신 프롤레타리아 독재 정권과 사회주의 제도를 튼튼히 보위하고 공고 발전시키기 위하 여 헌신적으로 투쟁하여야 한다.
4) 주체 사상의 위대한 혁명적 기치를 높이 들고 조국 통일과 혁명의 전국적 승리를 위하여 우리나라에서의 사회주의 공산 주의 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하여야 한다.
5) 전 세계에서의 주체 사상의 승리를 위하여 끝까지 싸워 나가야 한다.
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충심으로 높이 우러러 모셔야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높이 우러러 모시는 것은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한 혁명 전사들의 가장 숭고한 의무이며 수령님을 높이 우러러 모시는 여기에 우리 조국의 끝없는 영예와 우리 인민의 영원한 행복이 있다.
1) 혁명의 영재이시며 민족의 태양이시며 전설적 영웅이신 위대한 김일성 동지를 수령으로 모시고 있는 것을 최대의 행복, 최고의 영예로 여기고 수령님을 끝없이 존경하고 흠모하여 영원히 높이 우러러 모셔야 한다.
2) 한 순간을 살아도 오직 수령님을 위하여 살고 수령님을 위하여서는 청춘도 생명도 기꺼이 바치며 어떤 역경 속에서도 수 령님에 대한 충성의 한 마음을 변함 없이 간직하여야 한다.
3)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가리키시는 길은 곧 승리와 영광의 길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수령님께 모든 운명을 전적으 로 위탁하며 수령님의 영도 따라 나아가는 길에서도 못해 낼 일이 없다는 철석같은 신념을 가지고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혁명 위업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야 한다.
3.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권위를 절대화하여야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권위를 절대화하는 것은 우리 혁명의 지상의 요구이며 우리 당과 인민의 혁명적 의지이다.
1)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밖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는 확고한 입장과 관점을 가져야 한다.
2) 위대한수령 김일성 동지를 정치 사상적으로 옹호하며 목숨으로 사수하여야 한다.
3)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의 위대성을 내외에 널리 선전하여야 한다.
4)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절대적인 권위와 위신을 백방으로 옹호하며 현대 수정주의와 온갖 원쑤들의 공격과 비난으로 부터 수령님을 견결히 보위하여야 한다.
5)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권위와 위신을 훼손시키려는 자그마한 요소도 비상 사건 화하여 그와 비타협적인 투쟁을 벌여 야 한다.
6)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의 초상화, 석고상, 동상, 초상 휘장, 수령님의 초상화를 모신 출판물, 수령님을 형상한 미술 작 품, 수령님의 현지 교시판, 당의 기본 구호들을 정중히 모시고 다루며 철저히 보위하여야 한다.
7)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의 위대한 혁명 력사와 투쟁 업적이 깃들어 있는 혁명 전적지, 혁명 사적지, 당의 유일 사상 교 양의 거점인 '김일성 동지 혁명 사적관'과 '김일성 동지 혁명 사상 연구실'을 정중히 꾸리고 잘 관리하며 철저히 보위하여 야 한다.
4.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 사상을 신념을삼고 수령님의 교시를 신조화하여야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 사상을 확고한 신념으로 삼고 수령님의 교시를 신조화하는 것은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한 주체형의 공산주의 혁명가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구이며 혁명 투쟁과 건설사업의 승리를 위한 선결 조건이다.
1)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 사상, 주체 사상을 자기의 뼈와 살로 유일한 신념으로 만들어야 한다.
2)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를 모든 사업과 생활의 확고한 지침으로 철석 같은 신조로 삼아야 한다.
3)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를 무조건 접수하고 그것을 자로하여 모든 것을재어 보며 수령님의 사상 의지대로만 사고 하고 행도하여야 한다.
4)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로작들과 교시들, 수령님의 영광 찬란한 혁명력사를 체계적으로, 전면적으로 깊이 연구 체득 하여야 한다.
5)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 사상을 배우는 학습회, 강연회, 강습을 비롯한 집체 학습에 빠짐없이 성실히 참가하여 매 일 2시간 이상 학습하는 규율을 철저히 세우고 학습을 생활화, 습성화하며 학습을 게을리 하거나 방해하는 현상을 반대하 여 적극 투쟁하여야 한다.
6)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 침투 체계를 철저히 세우고 수령님의 교시와 당의 의도를 제때에 정확히 전달 침투하여 야 하며 왜곡 전달하거나 자기 말로 전달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7) 버거, 토론, 강연을 하거나 출판물에 실린 글을 쓸 때에는 언제나 수령님의 교시를 정중히 인용하고 그에 기초하여 내용을 전개하며 그와 어긋나게 말하거나 글을 쓰는 일이 없어야 한다.
8)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와 개별적 간부들의 지시를 엄격히 구별하며 개별적 간부들의 지시에 대하여서는 수령님 의 교시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를 따져 보고 조금이라도 어긋날 때에는 즉시 문제를 세우고 투쟁하여야 하며 개별적 간부 들의 발언 내용을 '결론'이요, '지시'요 하면서 조직적으로 전달하거나 집체적으로 토의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9)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와 당정책에 대하여 시비 중상하거나 반대하는 반당적인 행동에 대하여서는 추호도 융화 묵과하지 말고 견결히 투쟁하여야 한다.
10)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 사상과 어긋나는 자본주의 사상, 봉건 유일 사상, 수정주의, 교조주의, 사대주의를 비롯 한 온갖 반당적, 반혁명적 사상 조류를 반대하여 날카롭게 투쟁하며 수령님의 혁명 사상, 주체 사상의 순결성을 철저히 고수하여야 한다.
5.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 집행에서 무조건성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를 무조건 집행하는 것은 수령님에 대한 충실성의 기본 요구이며 혁명 투쟁과 건설 사업의 승리를 위한 결정적 조건이다.
1)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를 곧 법으로, 지상의 명령으로 여기고 사소한 이유와 구실도 없이 무한한 헌신성과 희생 성을 발휘하여 무조건 철저히 관철하여야 한다.
2)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의 심려를 덜어 드리는 것을 최상의 영예로, 신성한 의무로 간주하고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하 여야 한다.
3)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를 관철하기 위한 창발적 의견들을 충분히 제기하며 일단 수령님께서 결론하신 문제에 대 해서는 중앙 집권제 원칙에 따라 자그마한 드팀도 없이 정확히 집행하여야 한다.
4)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와 당 정책을 접수하면 곧 집체적으로 토의하여 옳은 집행 대책과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 고 조직 정치 사업을 짜고 들며 속도전을 벌여 제때에 철저히 집행하여야 한다.
5)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 집행 대장을 만들어 놓고 교시 집행 정형을 정상적으로 총화하고 재 포치하는 사업을 끊 임 없이 심화시켜 교시를 중도 반단 함이 없이 끝까지 관철하여야 한다.
6)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를 말로만 접수하고 집행을 태공하는 현상, 무책임하고 주인답지 못한 태도, 요령주의, 형 식주의, 보신주의를 비롯한 온갖 불건전한 현상을 반대하여 적극 투쟁하여야 한다.
6.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중심으로 하는 전당의 사상 의지적 통일과 혁명적 단결을 강화하여야 한다.
전당의 강철같은 통일 단결은 당의 불패의 힘의 원천이며 혁명 승리의 확고한 담보이다.
1)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중심으로 하는 전당의 사상 의지적 통일을 눈동자와 같이 지키고 더욱 튼튼히 다져 나가야 한 다.
2) 모든 단위, 모든 초소에서 수령님에 대한 충실성에 기초하여 혁명적 동지애를 높이 발양하며 대렬의 사상 의지적 단결을 강화하여야 한다.
3)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에 대한 충실성을 척도로 하여 모든 사람들을 평가하고 원칙적으로 대하여 수령님께 불성실하고 당의 유일 사상 체계와 어긋나게 행동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직위와 공로에 관계없이 날카로운 투쟁을 벌여야 한다.
4) 개별적 간부들에 대하여 환상을 가지거나 아부 아첨하며 개별적 간부들을 우상화하거나 무원칙하게 내세우는 현상을 철 저히 반대하여야 하며 간부들이 선물을 주고 받는 현상을 없애야 한다.
5) 당의 통일 단결을 파괴하고 좀먹는 종파주의, 지방주의, 가족주의를 비롯한 온갖 반 당적 사상 요소를 반대하여 견결히 투 쟁하며 그 사소한 표현도 절대로 묵과하지 말고 철저히 극복하여야 한다.
7.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따라 배워 공산주의적 풍모와 혁명적 사업 방법, 인민적 사업 작풍을 소유하여야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지니신 고매한 공산주의적 풍모와 혁명적 사업 방법, 인민적 사업 작풍을 따라 배우는 것은 모든 당원들과 근로자들의 신성한 의무이며 수령님의 혁명 전사로서의 영예로운 사명을 다하기 위한 필수적 요구이다.
1) 당의 노동 계급과 인민의 이익을 첫 자리에 놓고 그것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하는 높은당성, 노동 계급성, 인민 성을 소유하여야 한다.
2) 계급적 원쑤들에 대한 비타협적 투쟁 정신과 확고한 혁명적 원칙성, 불요불굴의 혁명 정신과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혁명 의 한길로 억세게 싸워 나가야 한다.
3) 혁명의 주인다운 태도를 가지고 자격 갱생의 혁명 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모든 일을 책임적으로 알뜰하고 깐지게 하며 부 닥치는 난관을 자체의 힘으로 뚫고 나가야 한다.
4) 노쇠와 침체, 안일과 해이를 반대하고 왕성한 투지와 패기와 정열에 넘쳐 언제나 긴장하게 전투적으로 일하며, 소극과 보 수를 배격하고 모든 사업을 대담하고 통이 크게 벌여 나가야 한다.
5) 혁명적 군중 관점을 튼튼히 세우고 청산리 정신, 청산리 방법을 철저히 관철하며, 대중 속에 깊이 들어가 대중을 가르치고 대중에게서 배우며 대중과 생사 고락을 같이 하여야 한다.
6) 이신 작칙의 혁명적 기풍을 발휘하며 어렵고 힘든 일에 언제나 앞장서야 한다.
7) 사업과 생활에서 항상 검박하고 겸손하며 소탈한 품성을 소유하여야 한다.
8) 관료주의, 주관주의, 형식주의, 본위주의를 비롯한 낡은 사업 방법과 작풍을 철저히 배격하여야 한다.
8.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안겨 주신 정치적 생명을 귀중히 간직하며 수령님의 크나큰 정치적 신임과 배려에 높은 정치적 자각과 기술로써 충성으로 보답하여야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안겨 주신 정치적 생명을 지낸 것은 우리의 가장 높은 영예이며 수령님의 정치적 신임에 충성으로 보답하는 여기에 정치적 생명을 및내여 나가는 참된 길이 있다.
1) 정치적 생명을 제일 생명으로 여기고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의 정치적 신념과 혁명적 지조를 굽히지 말며 정치적 생명을 위해서는 육체적 생명을 초개와 같이 바칠 수 있어야 한다.
2) 혁명 조직을 귀중히 여기고 개인의 이익을 조직의 이익에 복종시키며 집단주의 정신을 높이 발휘하여야 한다.
3) 조직 생활에 자각적으로 참가하며 사업과 생활을 정규화, 규범화하여야 한다.
4) 조직의 결정과 위임 분공을 제때에 서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5) 2일 및 주조직 생활 총화에 적극 참가하여 수령님의 교시와 당정책을 자로 하여 자기의 사업과 생활을 높은 정치 사상적 수준에서 검토 총화하며 비판의 방법으로 사상 투쟁을 벌이고 사상 투쟁을 통하여 혁명적으로 단련하고 끊임없이 개조해 나가야 한다.
6) 혁명 과업 수행에 투신하고 노동에 성실히 참가하며 혁명적 실천 과정을 통하여 혁명화를 다그쳐야 한다.
7) 가장 고귀한 정치적 생명을 안겨 주신 수령님의 크나큰 정치적 신임과 배려에 충성으로 보답하기 위하여 높은 치적 열성 을 발휘하며 정치 이론 수준과 기술 실무 수준을 높여 언제나 수령님께서 맡겨 주신 혁명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여야 한다.
9.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유일적 령도 밑에 전당, 전국, 전군이 한결같이 움직이는 강한 조직 규율을 세워 야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유일적 령도 체계를 튼튼히 세우는 것은 당을 조직 사상적으로 강화하고 당의 령도적 역할과 전투적 기능을 높이기 위한 근본 요구이며 혁명과 건설의 승리를 위한 확고한 담보이다.
1)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 사상을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하여 혁명과 건설을 수행하며 수령님의 교시와 명령, 지 시에 따라 전당,전국, 전군이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수령님의 유일적 령도 체계를 철저히 세워야 한다.
2) 모든 사업을 수령님의 유일적 령도 체계의 의거하여 조직 진행하며 정책적 문제들은 수령님의 교시와 당 중앙의 결론에 의해서만 처리하는 강한 혁명적 질서와 규율을 세워야 한다.
3)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혁명 투쟁과 건설 사업에 대한 당의 령도를 확고히 보장하며 국가, 경제 기관 및 근로 단체 일군 들은 당에 철저히 의거하고 당의 지도 밑에 모든 사업을 조직 집행해 나가야 한다.
4)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를 관철하기 위한 당과 국가의 결정, 지시를 정확히 집행하여야 하며 그것을 그릇되게 해 석하고 변경시키거나 그 집행을 여기는 현상과는 강하게 투쟁하며 국가의 법규범과 규정들을 자각적으로 엄격히 지켜야 한다.
5) 개별적 간부들이 아래 단위의 당, 정권 기간 및 근로 단체의 조직적인 회의를 자의대로 소집하거나 회의에서 자의대로 '결 론'하며 조직적인 승인 없이 당의 구호를 마음대로 떼거나 만들어 붙이며 당중앙의 승인없이 사회적 운동을 위한 조직을 내오는 것과 같은 일체 비조직적인 현상들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6) 개별적 간부들이 월권 행위를 하거나 직권을 람용하는 것과 같은 온갖 비 원칙적인 현상들을 반대하여 적극 투쟁하여야 한다.
7) 우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에 대한 충실성을 기본 척도로 하여 간부들을 평가하고 선발 배치하여야 하며, 친척, 친우, 동향, 동창, 사제 관계와 같은 정실, 안면 관계에 의하여 간부 문제를 처리하거나 개별적 간부들이 제멋대로 간부들을 떼고 등용 하는 행동에 대하여서는 묵과하지 말고 강하게 투쟁하며 간부 사업에서 제정된 질서와 당적 규율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8) 당, 국가 및 군사 기밀을 엄격히 지키며 비밀을 누설하는 현상들을 반대하여 날카롭게 투쟁하여야 한다.
9) 당의 유일 사상 체계와 당의 유일적 지도 체계에 어긋나는 비조직적이며 무규율 적인 현상에 대하여서는 큰 문제이건 작 은 문제이건 제때에 당중앙위원회에 이르기까지 당 조직에 보고하여야 한다.
10.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개척하신 혁명 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계승하며 완성하여 나가야 한다.
당의 유일적 지도 체계를 확고히 세우는 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 위업을 고수하고 빛나게 계승 발전시키며 우리 혁명 위업의 종국적 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결정적 담보이다.
1) 전당과 온 사회에 유일 사상 체계를 철저히 세우며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혁명 위업을 대를 이어 빛나게 완수하기 위하여 수령님의 령도 밑에 당 중앙의 유일적 지도 체계를 확고히 세워야 한다.
2)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항일 혁명 투쟁 시기에 이룩하신 영광스러운 혁명 전통을 고수하고 영원히 계승 발전시키며 혁명 전통을 헐뜯거나 말살하려는 반 당적 행동에 대해서는 그 자그마한 표현도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하여야 한다.
3) 당 중앙의 유일적 지도 체계와 어긋나는 사소한 현상과 요소에 대해서도 묵과하지 말고 비타협적으로 투쟁하여야 한다.
4) 자신뿐 아니라 온 가족과 수대들도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러 모시고 수령님께 충성 다하며 당 중앙의 우일적 지도에 끝없 이 충실하도록 하여야 한다.
5) 당 중앙의 권위를 백방으로 보장하며 당 중앙을 목숨으로 사수하여야 한다.
모든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당의 유일 사상 체계를 확고히 세움으로써 누구나 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 끝없이 충직한 근위대, 결사대가 되어야 하며 수령님께서 가리키시는 길을 따라 혁명 위업을 끝까지 완성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