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 우선적 대북정책 필요하다
- 작성일
- 2004.11.01 22:02
- 등록자
- 채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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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1
북한인권문제가 한반도 사안 중에서 핵심 어젠다로 부상하고 있다. 유엔인권위원회가 지난 7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을 임명한데 이어, 미국 의회가 지난 10월 4일 '2004 북한인권법'을 통과(10월 18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서명)시킨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있다.
그간 북핵문제에 가려져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문제가 소홀히 취급돼 왔었다. 그러나 이제 북한 인권문제가 안보문제 못지 않게 중요한 이슈로 다뤄지게 됐다. 또 규탄 결의 채택 등 선언적 차원을 벗어나, 4년간 매년 2,400만 달러라는 막대한 재원을 가지고 실질적 해결을 추구할 수 있게 됐다. 이 점이 무엇보다 가장 큰 진전이다. 미국 주도로 진행되는 것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
사실 북핵문제의 심각성은 핵개발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다. 무자비하게 인권을 탄압하는 독재국가가 위험스런 대량살상무기를 가지려 할 때 국제평화에 어떤 위협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에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생명이 없는 무기 그 자체보다는 이를 가지려 하는 자의 반민주성, 호전성과 예측불가성이 더 문제였던 것이다.
인권이 충분하게 보장되고 민주화된 나라와는 합리적인 협상이 가능하다. 핵문제의 '완전해결'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북한인권을 제쳐놓고 북핵에만 매달려 왔던 우리의 대북정책, 특히 핵개발을 포기하기만 하면 북한의 (독재)체제 안전까지도 전면 보장하겠다는 발상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북한의 열악한 인권은 물론이고, 생화학무기, DMZ에 전진배치된 재래식 무기는 그대로 있어도 된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간 북한인권문제에 임하는 한국 정부의 입장은 국제사회와 계속 엇박자를 보여 왔다. 특히 북한인권 NGO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양심적 민주세력들은 한국의 햇볕정책에 강한 톤으로 비난을 퍼부었던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필자가 접촉한 미국 등 서방의 NGO 활동가들은 한국의 대북정책이 끔직하다(terrible)고 꼬집기도 했다.
'북한인권법' 제정 후 관련 당사국들이 보이는 태도는 제각기 다르다. 북한은 '북한인권법'을 고립·압살정책의 도구로 규정하면서, 미국이 부당한 내정간섭을 기도한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중국은 탈북자 지원단체를 엄벌에 처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게다가 탈북자를 비호하는 나라의 외교공관을 강도 높게 비난함으로써 향후 탈북자정책의 변화를 시사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대량탈북 사태의 빈발과 북한체제의 조기 붕괴 가능성 등 '북한인권법'이 가져올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사전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정부 차원의 공식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는 않으나, '러시아의 소리' 방송 보도에 비춰 우려한다는 태도인 것 같다. 그러나 일본은 납치자문제에 진전을 기대한다면서, 적극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우리 정부는 10월 1일 ①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지속적 관심, ② 국가별 대응방식의 전략적 선택 ③ 화해·협력을 통한 점진적 인권개선 등 북한인권 관련 3대 입장을 발표했다. 최근 들어서는 6자회담과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입장을 추가했다.
한 마디로 남북경협과 대북지원 등으로 북한주민의 식량권을 개선하는 데 주력하되, 탈북자, 정치범수용소 등 핵심적인 대북 인권사안은 조용하게, 또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의 정부 입장과 별반 차이가 없다. 여전히 북한인권보다는 화해·협력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는데, 이런 정도로 향후 미국의 대북인권정책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인권은 보편적 가치의 문제이며 삶의 원칙에 속한 문제다. 그래서 오늘날 '인권에는 국경이 없다'는 개념이 국제인권법의 철학적 토대요, 기본원리로 자리잡고 있다. 유엔헌장과 국제인권규약은 인권문제를 탈국내문제화시킨 대표적인 국제문서이다. 이런 국제규범에 비춰 인류의 양심에 충격을 줄 만큼 절박한 상태에 이른 북한인권 상황의 개선을 추구하는 것은 결코 불법적인 내정간섭이 아니다. 북한인권문제는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인종분리) 정책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라 하겠다.
북한인권에 침묵하는 것은 범죄행위를 묵인·고무하는 것이다. 독재정권과 무조건적으로 혹은 야합적으로 추진하는 화해·협력은 인권탄압의 불법체제를 지속시키는 수구적인 대북정책이 된다. 따라서 대북지원과 남북협력은 어디까지나 북한인권(특히 시민적 정치적 자유) 개선에 이바지할 때 의미가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수령의 유일적 영도는 양립할 수 없으며, 서로 상극적인 체제 하에서 살아온 남과 북의 주민들이 한 울타리 안에서 평화롭게 공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북한인권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민족적 과제이다. 요컨대 인권이 없는 대북정책은 도덕성을 결여한 것일 뿐더러, 참다운 '민주적' 통일정책이 될 수 없다.
인권은 '거론'할 때 '개선'이 가능하다. 그리고 정공법을 구사할 때 제 효과를 발휘한다. 이제 정부는 새로운 환경에 걸맞은 입체적이고 전방위적인 대북인권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범정부 차원의 협의체와 콘트롤 타워 시스템, 정부와 민간부문의 적절한 역할 분담, 국제사회와의 협력, 특히 한·미간의 북한인권 공조가 포함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 '북한인권법'을 부정적인 자세로만 볼 것이 아니라, 북한의 개방과 변화에 기여하도록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중국에 대해서는 난민판정절차 개시 거부와 기획망명 시 제3국 추방이라는 변칙의 사용을 즉각 중단하고, NGO 활동가들의 신변안전 보장 및 탈북자 지원활동을 허용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더 이상 저자세의 '조용한 외교'로는 북한인권 개선을 이룩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