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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권력은 자유를 속박하고자 한다
- 작성일
- 2018.07.03 10:44
- 등록자
- 안OO
- 조회수
- 1430
빨갱이’라는 말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친일파"와 함께 치욕적이고 자극적인 용어다. 그 중에서도 ‘빨갱이’는 반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 땅의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이들을 옥죄는 도구로 악용된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공산주의자’를 비하한 표현인 ‘빨갱이’란 말은 대체 우리사회에서 언제, 어떤 경위로 생겨났고 또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는지 알아 보기로 하자.그리하여 다시는 정치적 반대자의 사상의 자유를 말살하는 패륜행위를 막아보자는 의미에서다.나의 정치적자유는 나의 정치적 반대자의 자유이기때문에 중요하다.
‘빨갱이’를 검색해보면 뜻밖에도 ‘빨갱이’라는 이름을 가진 물고기 설명이 뜬다. ‘빨갱이’란 ‘농어목 망둑어과의 물고기로 새빨갛고 작은 몸을 가졌으며, 강어귀나 연안에 굴을 파고 생활한다.’고 했다. ‘빨갱이’라는 이름을 가진 물고기가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우리사회에서 ‘빨갱이’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1948년 10월에 발생한 ‘여순사건’ 부터 인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빨갱이’ 탄생의 원류로 일컬어지는 ‘여순사건’은 한동안 알려진 것처럼 북한의 지령을 받아 시작된 것도 아니고 남로당과도
전혀 상관이 없는일로 ‘여순사건’의 봉기 주체는 14연대 일부 하사관들로 이들은 ‘제주4.3사건’을 진압하라는 이승만 정권의 명령에
대해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며 봉기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의 봉기가 단지 군인들의 반란으로 끝나지 않고 지역민들이 대거 가세하면서 이승만 정권을 위협하게 되면서 무자비한 토벌의 대상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여순사건’을 계기로 ‘빨갱이’라는 용어는 피아(彼我)를 구분하는 분명한 ‘경계선’으로 등장하였다. 이승만 정권은 ‘여순사건’ 주모자들을 정국 혼란을 유발한 세력인 동시에 양민을 마구 학살하는 도살자, 악마의 이미지를 씌었다. 그리하여 ‘빨갱이는 죽여도 좋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고, 이제 ‘국민’들에게는 ‘빨갱이’를 박멸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졌다. 심지어 빨갱이를 죽이는 일이라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사회적 정당성이 용인되었다.조봉암사건, 보도연맹사건,인혁당사법살인등 이루 셀수없을 정도의 탄압이 횡행하였고 그기반으로 독재정권은 유지할수 있었다.어릴적 "무찌르자 공산당"이라는 구호를 거의 매일 벽보나 학교교육으로 접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그이전에도 동학을 빨갱이로 몰아 처형시킨 수운최제우선생의 죄명이 左道亂政이었다.좌도난정이란 유교 이외의 종교로써 유교의 가르침과 법도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일컷는다.보국안민 척양척왜와 인내천을 설파한 수운이 요즘말로 빨갱이였다는 것이다.
어쨋든 1863년(철종 14) 겨울, 선전관 정구룡(鄭龜龍)은 포졸을 거느리고 경주 용담에 들이닥쳐 동학을 주장하는 최제우를 잡아갔다. 최제우는 왕명에 의해 천주를 외우고 민심을 현혹시키는 서학쟁이 즉좌도난정의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그는 서울로 압송되는 도중 과천까지 왔다가 국상(철종의 죽음)을 만나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중죄인이므로 의금부의 처결을 받아야 했으나 국상 중에는 모든 중앙의 옥사가 중지된다. 이에 국상 기간을 넘기고 다시 조사하게 되면 《경국대전》에 규정된 결옥(決獄)의 기한을 지킬 수가 없어 하급기관으로 이첩한 것이다(《승정원일기》 고종 즉위년 12월 20일조, 정구룡의 〈장계〉).
어쨌든 최제우는 대구 장대(지금의 달성공원 안)에서 처형당했고 머리는 남문 밖에 사흘 동안 조리돌렸다. 여순사건보다 더 앞서
왕조의 안정을 도모하기위해 서학에 맞서 싸웠던 동학의 창시자를 서학쟁이라는 억지논리로 죽인것이다.
“우리사회에서 ‘빨갱이’란 단어는 단지 공산주의 이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빨갱이’란 말은 짐승만도 못한 존재, 도덕적으로 파탄 난 비인간적 존재, 국민과 민족을 배신한 존재를 천하게 이르는 말이다. 외국의 경우에도 공산주의자를 폄하하는 용어는 존재한다. 일본에서 사용되는 ‘아카(赤, アカ)’, 구미에서 사용되는 ‘꼬미(commie)’ 등은 모두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일컫는 용어들이다. 이들 용어에는 공산주의자를 폄하하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의 ‘빨갱이’처럼 죽여야 하는 대상, 비인간적인 존재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 하에서 ‘반공’은 이 땅의 사람들을 ‘국민’과 ‘비국민’으로 가르는 잣대나 마찬가지였다.
일종의 십자가밟기 다름아니었다.그러나 이승만박정희정권의 반공주의자는 대부분 친일행적을 감추고 애국민중을 탄압하기위한
도구로서의 반공을 외쳐댄것 또한 사실이다.즉 남은 반공으로 북은 수령통치를 앞세워 적대적공존으로 자신들의 영달을 추구헸던
짜고치는 고스톱이었다.
1980년대에는 ‘좌경용공 세력’이라는 말이 널리 유포되었다.필자처럼 학생운동을 하는 자는 모두 그들의 눈에는 좌경용공세력이었다 빨갱이라는 이름하에 너무 많은 정치적 탄압이 이루어지면서 그 효용성이 반감된 데 따른 것인지,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다. 하지만 그 기능은 빨갱이란 말과 똑같이 국가정보기관을 동원해 정치적 반대파를 색출해 탄압하는 데 있었다.
박정희 전두환의 맥을 이어 이명박근혜의 국정원이 대선 기간에 인터넷 댓글을 단 것은 종북세력들의 심리전에 대항하기 위한 정상적인 활동이라는 것이다. ‘빨갱이’와 ‘좌경용공’에 이어 ‘종북세력’이 국정원의 불법적인 활동을 정당화하는 전가의 보도로 다시 이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구기득권반통일세력들이 말하는 ‘종북’에는 김대중, 노무현문재인 대통령과 현재의 386
정치인들이 포함된다.김제동,윤도현이나 김여진 씨 같은 연예인들을 비롯해 정부를 비판하는 국민들도 역시 ‘종북빨갱이세력’으로
규정하고 블렉리스트를 작성해서 온갖 악행패륜을 저질러왔음이 밝혀졌다. 촛불혁명으로 수립한 민주정부하에서도 정신나간 자한당정치인들은 청와대가 종북세력에 의해 장악되었다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홍준표는 나라가 통째로 넘어갔다고도 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정권 안보를 국가안보라는 허울로 치장하고, ‘반공’이라는 철 지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다양한 의견이 보장되어야 하는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있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하에서 그랬듯이 징역에 들어있는 이명박근혜도 전 국민의 사상을 통제하고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막아 정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겠다는 것,다름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무혈혁명을 경험한 대한민국의 민중들은 각성하기 시작했다.대선에 이어 지방선거에서도 반통일 수구기득권세력에 철퇴를 가하여 主權在民을 실현하고 전세계민주주의 역사를 다시 쓰고있다.지긋지긋한 종북색깔론과 지역주의를 깨부수고
상식에 기반한 민주,평등,평화를 선택했다.문재인대통령당선이 1차촛불혁명이고 이명박근혜구속탄핵이 2차촛불혁명이며 이번지방선거가 3차 촛불혁명의 결과물이라고 단언한다.가장중요한 4차촛불혁명은 다가올 국회입법권력을 갈아치우는것이 될것이다.
그들은 이제 반공과 종북이라는 외침이 외면받아 더이상 장사를 이어갈 자본재가 소진되어 가게문을 닫아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것이다.그들은 언제나 근현대사에서 일본과, 미국 반공과 자유민주주의는 삶을 부유하게 누리기 위한 핑계에 불과한 것이지 그들은 한번도 민족문제에 대한 고민이나 참된민주주의가 그들의 정체성이었던 적이 없다. 가증스러운 완장찬 기회주의자들이었을 뿐이다.
촛불혁명을 보고서도 변함없이 나오는 이 빨갱이라는 말은 그들의 최후단발마라 보여지기 떄문에 우려스러우면서 동시에 가련하고
애처롭지만 혹시라도 있을 그들의 부활이 염려되는 것이다. 다시는 이땅에서 완장차고 설치는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하는 불의가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자유와 자유 아님이 갈리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법이 어디에서 오느냐 하는데 달렸다. 자유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의 한 개인 또는 한 계급에서 나온다. 백범 김구 선생님 말씀
*군청담당자의 일방적 삭제에 약간의 분노를 느끼면서 음담패설이 아닌한 글쓴이의 의사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접근하시길 기대해 봅니다
부산면 꽃동네에서 반민특위 안명규 올림
‘빨갱이’를 검색해보면 뜻밖에도 ‘빨갱이’라는 이름을 가진 물고기 설명이 뜬다. ‘빨갱이’란 ‘농어목 망둑어과의 물고기로 새빨갛고 작은 몸을 가졌으며, 강어귀나 연안에 굴을 파고 생활한다.’고 했다. ‘빨갱이’라는 이름을 가진 물고기가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우리사회에서 ‘빨갱이’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1948년 10월에 발생한 ‘여순사건’ 부터 인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빨갱이’ 탄생의 원류로 일컬어지는 ‘여순사건’은 한동안 알려진 것처럼 북한의 지령을 받아 시작된 것도 아니고 남로당과도
전혀 상관이 없는일로 ‘여순사건’의 봉기 주체는 14연대 일부 하사관들로 이들은 ‘제주4.3사건’을 진압하라는 이승만 정권의 명령에
대해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며 봉기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의 봉기가 단지 군인들의 반란으로 끝나지 않고 지역민들이 대거 가세하면서 이승만 정권을 위협하게 되면서 무자비한 토벌의 대상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여순사건’을 계기로 ‘빨갱이’라는 용어는 피아(彼我)를 구분하는 분명한 ‘경계선’으로 등장하였다. 이승만 정권은 ‘여순사건’ 주모자들을 정국 혼란을 유발한 세력인 동시에 양민을 마구 학살하는 도살자, 악마의 이미지를 씌었다. 그리하여 ‘빨갱이는 죽여도 좋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고, 이제 ‘국민’들에게는 ‘빨갱이’를 박멸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졌다. 심지어 빨갱이를 죽이는 일이라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사회적 정당성이 용인되었다.조봉암사건, 보도연맹사건,인혁당사법살인등 이루 셀수없을 정도의 탄압이 횡행하였고 그기반으로 독재정권은 유지할수 있었다.어릴적 "무찌르자 공산당"이라는 구호를 거의 매일 벽보나 학교교육으로 접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그이전에도 동학을 빨갱이로 몰아 처형시킨 수운최제우선생의 죄명이 左道亂政이었다.좌도난정이란 유교 이외의 종교로써 유교의 가르침과 법도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일컷는다.보국안민 척양척왜와 인내천을 설파한 수운이 요즘말로 빨갱이였다는 것이다.
어쨋든 1863년(철종 14) 겨울, 선전관 정구룡(鄭龜龍)은 포졸을 거느리고 경주 용담에 들이닥쳐 동학을 주장하는 최제우를 잡아갔다. 최제우는 왕명에 의해 천주를 외우고 민심을 현혹시키는 서학쟁이 즉좌도난정의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그는 서울로 압송되는 도중 과천까지 왔다가 국상(철종의 죽음)을 만나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중죄인이므로 의금부의 처결을 받아야 했으나 국상 중에는 모든 중앙의 옥사가 중지된다. 이에 국상 기간을 넘기고 다시 조사하게 되면 《경국대전》에 규정된 결옥(決獄)의 기한을 지킬 수가 없어 하급기관으로 이첩한 것이다(《승정원일기》 고종 즉위년 12월 20일조, 정구룡의 〈장계〉).
어쨌든 최제우는 대구 장대(지금의 달성공원 안)에서 처형당했고 머리는 남문 밖에 사흘 동안 조리돌렸다. 여순사건보다 더 앞서
왕조의 안정을 도모하기위해 서학에 맞서 싸웠던 동학의 창시자를 서학쟁이라는 억지논리로 죽인것이다.
“우리사회에서 ‘빨갱이’란 단어는 단지 공산주의 이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빨갱이’란 말은 짐승만도 못한 존재, 도덕적으로 파탄 난 비인간적 존재, 국민과 민족을 배신한 존재를 천하게 이르는 말이다. 외국의 경우에도 공산주의자를 폄하하는 용어는 존재한다. 일본에서 사용되는 ‘아카(赤, アカ)’, 구미에서 사용되는 ‘꼬미(commie)’ 등은 모두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일컫는 용어들이다. 이들 용어에는 공산주의자를 폄하하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의 ‘빨갱이’처럼 죽여야 하는 대상, 비인간적인 존재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 하에서 ‘반공’은 이 땅의 사람들을 ‘국민’과 ‘비국민’으로 가르는 잣대나 마찬가지였다.
일종의 십자가밟기 다름아니었다.그러나 이승만박정희정권의 반공주의자는 대부분 친일행적을 감추고 애국민중을 탄압하기위한
도구로서의 반공을 외쳐댄것 또한 사실이다.즉 남은 반공으로 북은 수령통치를 앞세워 적대적공존으로 자신들의 영달을 추구헸던
짜고치는 고스톱이었다.
1980년대에는 ‘좌경용공 세력’이라는 말이 널리 유포되었다.필자처럼 학생운동을 하는 자는 모두 그들의 눈에는 좌경용공세력이었다 빨갱이라는 이름하에 너무 많은 정치적 탄압이 이루어지면서 그 효용성이 반감된 데 따른 것인지,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다. 하지만 그 기능은 빨갱이란 말과 똑같이 국가정보기관을 동원해 정치적 반대파를 색출해 탄압하는 데 있었다.
박정희 전두환의 맥을 이어 이명박근혜의 국정원이 대선 기간에 인터넷 댓글을 단 것은 종북세력들의 심리전에 대항하기 위한 정상적인 활동이라는 것이다. ‘빨갱이’와 ‘좌경용공’에 이어 ‘종북세력’이 국정원의 불법적인 활동을 정당화하는 전가의 보도로 다시 이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구기득권반통일세력들이 말하는 ‘종북’에는 김대중, 노무현문재인 대통령과 현재의 386
정치인들이 포함된다.김제동,윤도현이나 김여진 씨 같은 연예인들을 비롯해 정부를 비판하는 국민들도 역시 ‘종북빨갱이세력’으로
규정하고 블렉리스트를 작성해서 온갖 악행패륜을 저질러왔음이 밝혀졌다. 촛불혁명으로 수립한 민주정부하에서도 정신나간 자한당정치인들은 청와대가 종북세력에 의해 장악되었다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홍준표는 나라가 통째로 넘어갔다고도 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정권 안보를 국가안보라는 허울로 치장하고, ‘반공’이라는 철 지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다양한 의견이 보장되어야 하는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있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 하에서 그랬듯이 징역에 들어있는 이명박근혜도 전 국민의 사상을 통제하고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막아 정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겠다는 것,다름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무혈혁명을 경험한 대한민국의 민중들은 각성하기 시작했다.대선에 이어 지방선거에서도 반통일 수구기득권세력에 철퇴를 가하여 主權在民을 실현하고 전세계민주주의 역사를 다시 쓰고있다.지긋지긋한 종북색깔론과 지역주의를 깨부수고
상식에 기반한 민주,평등,평화를 선택했다.문재인대통령당선이 1차촛불혁명이고 이명박근혜구속탄핵이 2차촛불혁명이며 이번지방선거가 3차 촛불혁명의 결과물이라고 단언한다.가장중요한 4차촛불혁명은 다가올 국회입법권력을 갈아치우는것이 될것이다.
그들은 이제 반공과 종북이라는 외침이 외면받아 더이상 장사를 이어갈 자본재가 소진되어 가게문을 닫아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것이다.그들은 언제나 근현대사에서 일본과, 미국 반공과 자유민주주의는 삶을 부유하게 누리기 위한 핑계에 불과한 것이지 그들은 한번도 민족문제에 대한 고민이나 참된민주주의가 그들의 정체성이었던 적이 없다. 가증스러운 완장찬 기회주의자들이었을 뿐이다.
촛불혁명을 보고서도 변함없이 나오는 이 빨갱이라는 말은 그들의 최후단발마라 보여지기 떄문에 우려스러우면서 동시에 가련하고
애처롭지만 혹시라도 있을 그들의 부활이 염려되는 것이다. 다시는 이땅에서 완장차고 설치는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하는 불의가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자유와 자유 아님이 갈리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법이 어디에서 오느냐 하는데 달렸다. 자유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의 한 개인 또는 한 계급에서 나온다. 백범 김구 선생님 말씀
*군청담당자의 일방적 삭제에 약간의 분노를 느끼면서 음담패설이 아닌한 글쓴이의 의사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접근하시길 기대해 봅니다
부산면 꽃동네에서 반민특위 안명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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