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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오만방자한 日".. 南과 공동전선/원코리아
- 작성일
- 2019.07.07 12:57
- 등록자
- 안OO
- 조회수
- 756
무역보복을 감행한 아베의 외고조부는 정한론을 주장한 요시다 쇼인의 밑에서 사상적 영향을 받은 오시다 요시마사로, 이 자는 청일전쟁 이전 경복궁을 기습하여 점거한 전적이 있는 일본 육군 대장 출신이다. 외조부는 태평양전쟁 1급전범 기시 노부스케로 일본의 군국주의를 주도했으며 전후 총리대신을 역임하기도 했다. 1936년 10월부터는 마지막 황제 푸이를 내세운 괴뢰만주국 정부에서 산업계를 지배하다가 1939년 3월 총무청 차장으로 승진하여 만주국「산업 개발5개년 계획」을 실시하였다.일제항복후 A급 전범 용의자였으나 기소되지 않고 석방되었다.<맥아더가 주도해서 방면>
이러한 전범의 후손인 아베 자신도 요시다 쇼인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고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 말한 관방장관의 언행에 동조하기도 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경제보복조치를 감행했을까를 알아보자. 군함도 강제노역과 관련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반감을 품고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시행했다고 보고 있다.
작년 10월에 한국 대법원에서 일본 강제노역 피해자 네분이 당시 일본 제철기업 (현 일본제철 구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권리를 인지하고 인정한 결과로,해당 기업에게 피해자 1명 당 1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사실이 있었다.
일본은 이에 대해 1965년 당시 일본정부가 맺었던 협정으로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청구권은 없으며, 사라졌다고 쭉 지속적으로 주장했지만,해당 판결이 이를 부인하면서 판결이 마무리 되었었다.이후 일본정부는 한국정부에 이 판결에 대한 협의를 요청했으나, 한국정부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었고 그래서 결국 지난 5월에 판결문에 따라 당시 제철기업이었던 일본제철은 한국 내에 보유하고 있던 자산을 강제매각 당했다고 주장 중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에 대해서만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하면서 무역전쟁을 선포한 거나 다름없다 할수있다.독재자 다까끼마사오의 굴욕적 한일수교의 여파가 아직도 진행중이다.
일제에게 “일사봉공의 결심으로 목숨을 다해 충성을 하겠다”는 혈서를 쓰고 만주군관이 된 박정희가 친일을 넘어 일본인처럼 행세했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자마자 박정희가 한 일은 굴욕적인 한일 수교였다. ‘일본이 한국을 지배함으로써 한국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는 구보타 망언으로 중단됐던 한일협상을 김종필을 내세워 재개한다. 김종필은 개별 청구권을 포기하는 대신 무상공여 포함 3억달러와 차관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일본과 합의한다.
굴욕적인 협상이라는 비난에 맞서 김종필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제2의 이완용이 되겠다”고 소리쳤다. 반대 시위가 확산되자 박정희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반대 목소리를 철저하게 탄압했다. 이 굴욕적 협상은 일본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반박할 근거를 제공해 주고 말았다.
이렇게 한일 수교가 이뤄지자 일제 때 판을 쳤던 친일매국노들이 다시 활동하기 시작한다. 박정희 주변 인물들과 일본의 만주인맥이 연결되며 한일관계에는 훈풍이 불었고, 친일파 후손들은 유신독재정권에서 날로 승승장구하면서 酒池肉林했고 오늘날까지 토착왜구로
남아 한반도 평화의 길을 훼방놓고 있는 중이다.
전범들을 모아둔 야스쿠니신사참배를 밥먹듯하는 아베의 기습적 무역보복은 일제가 일방적침략을 감행했던 청일전쟁, 러일전쟁, 태평양전쟁의 기습작전과 동일선 상에 있다. 일제는 일방적공격을 감행한 후에 선전포고를 하는 과거의 악습을 이제 경제보복에 적용중임을 알수 있다.
이에 대처하기위해 우리정부와 국민들은 항일태세를 갖추고 전면전에 대비하고 있는 형국이다.우리는 여기서 대일 무역적자에 대해 알고 넘어가야 한다.
1965년 굴욕적 한일국교 수교후 무역적자가 700조원에 달하고 있는 실정이다.2018년 자동차 무역적자는 1조 4000억원이고 일본차수입이 45252대 인것에 반해서 국산차일본수출은 17대를 판매한 실정이다.현대차는 겨울연가 욘사마인기를 발판삼아 광고모델로 일본시장 진출을 했으나 일본소비자들의 외면으로 2010년 일본시장 철수를 결정할수 밖에 없었다.그런 반면 올해 상반기 내수에 팔린 수입차 10만9314대 중 일본 브랜드는 2만3482대로 집계됐다. 판매 수입차 5대 중 1대가 일본차였다는 의미로 한국토요타는 렉서스를 더해 1만4691대를 내수에서 팔았다.
내수 판매 일본차 중 60% 이상이 토요타와 렉서스 제품이다. 과거 독도 영유권 분쟁 등 한일 외교 갈등에도 일본차 판매량에는 큰 변화가 없었던 전례도 있다.지난 6일 오후 3시30분쯤 대구 동성로의 한 중저가 일본 브랜드 의류매장 안은 여름옷을 고르는 10~50대 고객들로 북적거리고, 계산대 앞에는 긴 줄이 늘어져 있다는 보도가 신문지상을 장식하고 있다 .
일본인들이 한국민을 조롱해도 할말이 없는 대목이다.전쟁범죄기업들의 물품을 사주는 것은 과거의 죄악을 묻지않고 미래에 똑같은 짓을 할수도 있는 반평화,惡의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는 전쟁범죄공동정범일수도 있다.
관광수지는 어떤가 알아보자.
한국인이 일본으로 향한 관광객수는 753만명으로 1위이고 중국385만으로 2위,3위는 베트남343만 순이다.그래서 불매운동의 불길이 자동차와 여행부분에 집중되고 있다.단순히 불매운동뿐 만이 아니라 수입다변화와 자체기술력을 배양하는 발판으로 삼아 제2의 경제주권을 세우는 정부와 기업의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특히 우리장흥군에는 일본 각료들이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한 民族魂안중근의사 사당 해동사와 반외세 척양척왜를 외치며 쓰러져간 동학농민군의 혼이 깃들여진 의향 이다.이번 기회를 발판 삼아 우리장흥군이 克日의 성지로 거듭날 수 있도록 민관이 힘을 합쳐 해동사와 동학알리기에 모두 나서야 할 중대한 싯점임을 다시 강조 해 본다.일제차 타고 다니는 자들이여! 유투브에서 꼭 도올선생의 한국독립운동사10부작을 찾아보고 듣고 다시 판단해 보시라.아마도 사람이라면 일제차를 폐차장에 갖다 버릴것이라 확신한다.마지막으로 풍신수길과 이등박문을 긍지와 자부심으로 삼는,그래서 대륙진출울 꿈꾸는 일본제국주의의 속성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임을 잊지말고 일상의 삶속에서 克日에 힘쓰는 의향장흥군민으로 살아 가보자.
구석기수도신북유적지에서 반민특위 안명규
이러한 전범의 후손인 아베 자신도 요시다 쇼인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고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 말한 관방장관의 언행에 동조하기도 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경제보복조치를 감행했을까를 알아보자. 군함도 강제노역과 관련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반감을 품고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시행했다고 보고 있다.
작년 10월에 한국 대법원에서 일본 강제노역 피해자 네분이 당시 일본 제철기업 (현 일본제철 구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권리를 인지하고 인정한 결과로,해당 기업에게 피해자 1명 당 1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사실이 있었다.
일본은 이에 대해 1965년 당시 일본정부가 맺었던 협정으로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청구권은 없으며, 사라졌다고 쭉 지속적으로 주장했지만,해당 판결이 이를 부인하면서 판결이 마무리 되었었다.이후 일본정부는 한국정부에 이 판결에 대한 협의를 요청했으나, 한국정부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었고 그래서 결국 지난 5월에 판결문에 따라 당시 제철기업이었던 일본제철은 한국 내에 보유하고 있던 자산을 강제매각 당했다고 주장 중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에 대해서만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하면서 무역전쟁을 선포한 거나 다름없다 할수있다.독재자 다까끼마사오의 굴욕적 한일수교의 여파가 아직도 진행중이다.
일제에게 “일사봉공의 결심으로 목숨을 다해 충성을 하겠다”는 혈서를 쓰고 만주군관이 된 박정희가 친일을 넘어 일본인처럼 행세했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자마자 박정희가 한 일은 굴욕적인 한일 수교였다. ‘일본이 한국을 지배함으로써 한국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는 구보타 망언으로 중단됐던 한일협상을 김종필을 내세워 재개한다. 김종필은 개별 청구권을 포기하는 대신 무상공여 포함 3억달러와 차관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일본과 합의한다.
굴욕적인 협상이라는 비난에 맞서 김종필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제2의 이완용이 되겠다”고 소리쳤다. 반대 시위가 확산되자 박정희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반대 목소리를 철저하게 탄압했다. 이 굴욕적 협상은 일본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반박할 근거를 제공해 주고 말았다.
이렇게 한일 수교가 이뤄지자 일제 때 판을 쳤던 친일매국노들이 다시 활동하기 시작한다. 박정희 주변 인물들과 일본의 만주인맥이 연결되며 한일관계에는 훈풍이 불었고, 친일파 후손들은 유신독재정권에서 날로 승승장구하면서 酒池肉林했고 오늘날까지 토착왜구로
남아 한반도 평화의 길을 훼방놓고 있는 중이다.
전범들을 모아둔 야스쿠니신사참배를 밥먹듯하는 아베의 기습적 무역보복은 일제가 일방적침략을 감행했던 청일전쟁, 러일전쟁, 태평양전쟁의 기습작전과 동일선 상에 있다. 일제는 일방적공격을 감행한 후에 선전포고를 하는 과거의 악습을 이제 경제보복에 적용중임을 알수 있다.
이에 대처하기위해 우리정부와 국민들은 항일태세를 갖추고 전면전에 대비하고 있는 형국이다.우리는 여기서 대일 무역적자에 대해 알고 넘어가야 한다.
1965년 굴욕적 한일국교 수교후 무역적자가 700조원에 달하고 있는 실정이다.2018년 자동차 무역적자는 1조 4000억원이고 일본차수입이 45252대 인것에 반해서 국산차일본수출은 17대를 판매한 실정이다.현대차는 겨울연가 욘사마인기를 발판삼아 광고모델로 일본시장 진출을 했으나 일본소비자들의 외면으로 2010년 일본시장 철수를 결정할수 밖에 없었다.그런 반면 올해 상반기 내수에 팔린 수입차 10만9314대 중 일본 브랜드는 2만3482대로 집계됐다. 판매 수입차 5대 중 1대가 일본차였다는 의미로 한국토요타는 렉서스를 더해 1만4691대를 내수에서 팔았다.
내수 판매 일본차 중 60% 이상이 토요타와 렉서스 제품이다. 과거 독도 영유권 분쟁 등 한일 외교 갈등에도 일본차 판매량에는 큰 변화가 없었던 전례도 있다.지난 6일 오후 3시30분쯤 대구 동성로의 한 중저가 일본 브랜드 의류매장 안은 여름옷을 고르는 10~50대 고객들로 북적거리고, 계산대 앞에는 긴 줄이 늘어져 있다는 보도가 신문지상을 장식하고 있다 .
일본인들이 한국민을 조롱해도 할말이 없는 대목이다.전쟁범죄기업들의 물품을 사주는 것은 과거의 죄악을 묻지않고 미래에 똑같은 짓을 할수도 있는 반평화,惡의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는 전쟁범죄공동정범일수도 있다.
관광수지는 어떤가 알아보자.
한국인이 일본으로 향한 관광객수는 753만명으로 1위이고 중국385만으로 2위,3위는 베트남343만 순이다.그래서 불매운동의 불길이 자동차와 여행부분에 집중되고 있다.단순히 불매운동뿐 만이 아니라 수입다변화와 자체기술력을 배양하는 발판으로 삼아 제2의 경제주권을 세우는 정부와 기업의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특히 우리장흥군에는 일본 각료들이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한 民族魂안중근의사 사당 해동사와 반외세 척양척왜를 외치며 쓰러져간 동학농민군의 혼이 깃들여진 의향 이다.이번 기회를 발판 삼아 우리장흥군이 克日의 성지로 거듭날 수 있도록 민관이 힘을 합쳐 해동사와 동학알리기에 모두 나서야 할 중대한 싯점임을 다시 강조 해 본다.일제차 타고 다니는 자들이여! 유투브에서 꼭 도올선생의 한국독립운동사10부작을 찾아보고 듣고 다시 판단해 보시라.아마도 사람이라면 일제차를 폐차장에 갖다 버릴것이라 확신한다.마지막으로 풍신수길과 이등박문을 긍지와 자부심으로 삼는,그래서 대륙진출울 꿈꾸는 일본제국주의의 속성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임을 잊지말고 일상의 삶속에서 克日에 힘쓰는 의향장흥군민으로 살아 가보자.
구석기수도신북유적지에서 반민특위 안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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