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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시행하시길 권고한다.
- 작성일
- 2019.07.11 14:13
- 등록자
- 안OO
- 조회수
- 973
기억하자! 조선청년들의 의거
1908년 3월23일 오전 샌프란시스코 페리 빌딩 인근에 조선 청년들이 전날 문양목을 비롯한 청년에게 두들겨 맞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친일파 외교고문 스티븐슨이 이곳 항구에서 워싱턴으로 도망간다는 소식을 듣고 스티븐슨을 암살할 계획으로 각각 흩어져 있다가 스티븐슨이 일본공사의 차에서 내리자 마자 전명운이 먼저 총을 들어 총격을 시도했으나 격발이 안되자 달려가 개머리판으로 스티븐슨의 얼굴을 가격한다.
이어 장인환이 또다른곳에서 총을 겨누고 세발을 총을 쏴 스티븐슨을 정확히 쓰러뜨린다. 이후 두 열사는 체포가 되었고 다음날 <뉴욕타임스>는 "조선 민족은 살아있다"라는 제목으로 조선청년들의 의거를 대서특필했다. 전명운과 장인환은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이며 각자 단독으로 거사를 실행했다. 제3의 인물로 추정되는 문양목 선생님은 이후 이들의 석방과 재판과정에 전부를 바친다. 이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이승만에게 재판과정의 통역을 부탁 했으나 이승만은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한다.이승만은 스티븐스사건의 통역을 의뢰받았지만, 학생 신분이며 기독교도로서 살인자를 변호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거부했고, 한인 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우남이승만연구』의 저자 정병준 교수에 따르면, 이승만은 덴버회의와 스티븐스사건을 통해 기독교 교육·출판 등에 의한 점진적 실력양성운동에 대한 지향성과 한국인들의 정서보다는 미국인들의 여론을 중시하고 추종하는 종미성향을 드러냈던 것이다.1910년 여름 이승만은 헤이스팅스에서 기독교 부흥집회를 열어 하루에 3차례씩 설교와 찬송 시간을 가졌다. 이승만은 군사훈련 대신에 이러한 종교 활동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1.스티븐스를 저격한 장인환과 전명운, 또 이등박문을 하얼빈에서 처단한 안중근은 일국의 명예를 더럽힌 범죄적 암살자에 불과하다.
2. 일본과 같은 강대국을 군사적으로 저항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
연해주 북만주 하와이 쿠바 에서 목숨을 걸고 무장투쟁에 혼신했던 그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매국노적 발언이다.
또한 이승만은 1919년 국제연합에 한국 위임통치를 청원하고 정권 유지에 눈이 어두워 1946년에는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겠다는 정읍발언을 했다.1948년 제주 4.3 항쟁, 1950년 국민보도연맹 사건, 1951년 국민 방위군 사건으로 12만명에 이르는 아사자, 병사자 동사자를 만들었던 장본인이다.또한 제헌의회에서 친일매국노 척결을 위해 만든 반민특위를 해산<1949년>시키고 친일매국노들을 등용해서 정의롭지 못한 우리 현대사의 기초를 만든 자이다.
1950년 한국전쟁 중 한강철교를 폭파하고 남쪽으로 도망치고 경찰 77명을 포함해 800여명의 피난민을 수장시켰으며 1951년 거창 신원면 500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양민을 학살하고, 6·25전쟁 중인 1952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추진, 1956년 중임제한 철폐로 헌법을 마음대로 개정해 3선 대통령으로 당선됐지만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로 4,19혁명으로 하와이로 야반도주해 일생을 마쳤던 독재자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다.
이승만과 다까끼마사오가 싸놓은 똥때문에 아직도 제국주의범죄국가 일본의 반성과 사죄는 요원하다.독일의 반성과 사죄에 버금가는 액션만이 일본이 지구촌 가족으로 함께 살아갈수 있는 유일한 길임에도 정신을 못차리는 아베신조가 불쌍해 보인다.권력이 뭐라고?
구천의 안중근의사,동학농민군들은 아직도 친일잔재와 친일파매국노의 후손들이 토착왜구로 자리잡고 득세하는 세상을 보시며 얼마나 원통해 하실까하는 마음에 한없는 분노와 적개심이 그들을 향한다.
사랑도 명에도 이름도 남김없이 대한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숨은 독립투쟁가들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는 일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소망해본다. 이것이 진정한 自主獨立 아닐까.
*민원신청/장동해동사는 전국유일무이한 제례를 지내는 안중근의사님 사당이다. 화재경보기,병충해로 부터 보호할수 있는 소독업체선정,CCTV설치와 군청관제실 연결등을 여러번 건의했으나 군청은 답이 없다.예전에는 만수사에 기거하면서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떠나고 지키는이 아무도 없다.박정희를 롤 모델로 삼겠다는 정당이 ‘우리공화당’이며 자유한국당이다.자본을 밑바탕으로 하는 그들의 힘은 아직도 막강하다. 일제를 지지하며 따르는 토착왜구<태극기부대,일베>들이 해동사를 겨눈다면 어찌 할것인가? 서둘러 시행하시길 권고한다.
의향 청정 장동면에서 반민특위 안명규
1908년 3월23일 오전 샌프란시스코 페리 빌딩 인근에 조선 청년들이 전날 문양목을 비롯한 청년에게 두들겨 맞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친일파 외교고문 스티븐슨이 이곳 항구에서 워싱턴으로 도망간다는 소식을 듣고 스티븐슨을 암살할 계획으로 각각 흩어져 있다가 스티븐슨이 일본공사의 차에서 내리자 마자 전명운이 먼저 총을 들어 총격을 시도했으나 격발이 안되자 달려가 개머리판으로 스티븐슨의 얼굴을 가격한다.
이어 장인환이 또다른곳에서 총을 겨누고 세발을 총을 쏴 스티븐슨을 정확히 쓰러뜨린다. 이후 두 열사는 체포가 되었고 다음날 <뉴욕타임스>는 "조선 민족은 살아있다"라는 제목으로 조선청년들의 의거를 대서특필했다. 전명운과 장인환은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이며 각자 단독으로 거사를 실행했다. 제3의 인물로 추정되는 문양목 선생님은 이후 이들의 석방과 재판과정에 전부를 바친다. 이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이승만에게 재판과정의 통역을 부탁 했으나 이승만은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한다.이승만은 스티븐스사건의 통역을 의뢰받았지만, 학생 신분이며 기독교도로서 살인자를 변호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거부했고, 한인 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우남이승만연구』의 저자 정병준 교수에 따르면, 이승만은 덴버회의와 스티븐스사건을 통해 기독교 교육·출판 등에 의한 점진적 실력양성운동에 대한 지향성과 한국인들의 정서보다는 미국인들의 여론을 중시하고 추종하는 종미성향을 드러냈던 것이다.1910년 여름 이승만은 헤이스팅스에서 기독교 부흥집회를 열어 하루에 3차례씩 설교와 찬송 시간을 가졌다. 이승만은 군사훈련 대신에 이러한 종교 활동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1.스티븐스를 저격한 장인환과 전명운, 또 이등박문을 하얼빈에서 처단한 안중근은 일국의 명예를 더럽힌 범죄적 암살자에 불과하다.
2. 일본과 같은 강대국을 군사적으로 저항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
연해주 북만주 하와이 쿠바 에서 목숨을 걸고 무장투쟁에 혼신했던 그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매국노적 발언이다.
또한 이승만은 1919년 국제연합에 한국 위임통치를 청원하고 정권 유지에 눈이 어두워 1946년에는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겠다는 정읍발언을 했다.1948년 제주 4.3 항쟁, 1950년 국민보도연맹 사건, 1951년 국민 방위군 사건으로 12만명에 이르는 아사자, 병사자 동사자를 만들었던 장본인이다.또한 제헌의회에서 친일매국노 척결을 위해 만든 반민특위를 해산<1949년>시키고 친일매국노들을 등용해서 정의롭지 못한 우리 현대사의 기초를 만든 자이다.
1950년 한국전쟁 중 한강철교를 폭파하고 남쪽으로 도망치고 경찰 77명을 포함해 800여명의 피난민을 수장시켰으며 1951년 거창 신원면 500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양민을 학살하고, 6·25전쟁 중인 1952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추진, 1956년 중임제한 철폐로 헌법을 마음대로 개정해 3선 대통령으로 당선됐지만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로 4,19혁명으로 하와이로 야반도주해 일생을 마쳤던 독재자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다.
이승만과 다까끼마사오가 싸놓은 똥때문에 아직도 제국주의범죄국가 일본의 반성과 사죄는 요원하다.독일의 반성과 사죄에 버금가는 액션만이 일본이 지구촌 가족으로 함께 살아갈수 있는 유일한 길임에도 정신을 못차리는 아베신조가 불쌍해 보인다.권력이 뭐라고?
구천의 안중근의사,동학농민군들은 아직도 친일잔재와 친일파매국노의 후손들이 토착왜구로 자리잡고 득세하는 세상을 보시며 얼마나 원통해 하실까하는 마음에 한없는 분노와 적개심이 그들을 향한다.
사랑도 명에도 이름도 남김없이 대한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숨은 독립투쟁가들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는 일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소망해본다. 이것이 진정한 自主獨立 아닐까.
*민원신청/장동해동사는 전국유일무이한 제례를 지내는 안중근의사님 사당이다. 화재경보기,병충해로 부터 보호할수 있는 소독업체선정,CCTV설치와 군청관제실 연결등을 여러번 건의했으나 군청은 답이 없다.예전에는 만수사에 기거하면서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떠나고 지키는이 아무도 없다.박정희를 롤 모델로 삼겠다는 정당이 ‘우리공화당’이며 자유한국당이다.자본을 밑바탕으로 하는 그들의 힘은 아직도 막강하다. 일제를 지지하며 따르는 토착왜구<태극기부대,일베>들이 해동사를 겨눈다면 어찌 할것인가? 서둘러 시행하시길 권고한다.
의향 청정 장동면에서 반민특위 안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