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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MBC R 황동현 시선집중 인터뷰▼
- 작성일
- 2019.08.23 11:08
- 등록자
- 안OO
- 조회수
- 838
●황앵커>> 장흥 신북구석기 유적은 국내에 보고된 구석기 유적중 가장 크고 유물의 밀집도도 높아서 그 가치와 의미가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신북구석기 유적이 지니고 있는 의미, 장흥신문 안명규기자 연결해서 들어보겠습니다.
●안명규기자>>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구석기 수도 청정장흥에 살고 있는 장흥신문 안명규 기자입니다.
●황앵커>> 신북유적의 발견과 규모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안명규기자>> 신북구석기 유적은 장흥군 장동면 신북 검은둥이 언덕의 국도 2호선 도로공사 중 유물이 쏟아져 나와 도로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2003~2004년에 조선대 이기길 교수팀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고 유물의 중요도에 맞게 2008. 4. 11 전라남도 기념물에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신북유적은 추정면적이 최소 4만여 평에 달하고 우리나라에서 보고된 후기 구석기 유적 중 가장 크고 6천여 평의 발굴에서 3만1천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밀집도 또한 가장 높으며 화덕자리가 6개나 드러나서 후기 구석기인들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할 것입니다. 또한 구석기시대 대규모 살림터가 자리해서 보성강 유역의 85개 유적군의 거점유적지로 볼 수 있다 할 것입니다. 그래서 첫 인사를 구석기 수도 청정장흥이라는 인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황앵커>> 그렇다면 신북 유적의 가치측면에서 말씀해 주시죠.
●안명규기자>> 우리나라 서남부의 젖줄인 보성강 유역에서 발견된 신북 유적은 3가지 중요한 대목이 있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한다.”입니다.
황 앵커께서는 학창시절에 구석기 타제석기, 신석기 마제석기로 배우셨을 텐데요 신북 유적에서 이 정설을 뒤집은 것입니다.
구석기 마제석기인 숫돌칼돌, 갈린돌 등 20여점이 나와 구석기 타제, 신석기 마제의 경계를 무너트려 세계 고고학회의 정설을 다시 정립해서 교과서 수정작업에 나서야 할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둘째, 왕인박사 이전에 이미 일본 열도와의 교류가 입증되었습니다.
한.일 양국은 이미 구석기 시대부터 문화 사회적 교류가 있었는데 신북 유적의 흑요석이 그 사실을 입증한다고 고고학계의 교수들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신북 유적에서는 백두산 직선거리 800km, 일본규슈 400km인데 두 지역의 흑요석이 출토되어 원거리 교류망 이었음을 알 수 있고 귀한 물품을 구하기 위한 구석기인들의 열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셋째, 신북 유적이 발굴된 보성강 유역은 후기 구석기인들의 파라다이스였는데 석기들의 수준이 고려 청자급의 보물들로서 지역민의 자긍심을 북돋는 결정체이며 선조들의 삶을 이해하는 역사문화 교육 컨텐츠의 위대한 유산이라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신북 유적은 세계구석기문화 연구의 산실인 프랑스 베제르 강 유역과 비견되는데요. 베제르강 유역에는 라스코동굴, 크로마뇽 사람 유적 등의 구석기 유적이 즐비해서 전 세계인들과 학자들이 구석기인들의 세계를 연구 탐험하는 별천지로 자리한 지 오랜 일입니다. 그래서 신북 유적을 잘 보존하고 홍보한다면 프랑스 베제르강 유역을 뛰어넘는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손색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황앵커>> 신북구석기 유적의 보존 관리 및 활용 방안은요?
●안명규기자>> 2008년 도 기념물 지정 후 10년 이상을 전남도 기념물에 머물러 있어 아쉬움이 큽니다. 그래서 신북유적보존회와 장흥군이 힘을 모아 국가사적지정 및 선사박물관 건립에 나서고 있습니다. 정종순 군수님과 황주홍의원님을 면담했는데 적극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지표명을 확인했습니다. 경기 연천, 공주 석장리는 국가사적지정 후에 선사박물관 건립과 구석기축제시행으로 지역 이미지 상승과 재정에 많은 도움을 가져와 지역의 성장 동력으로 자리했습니다. 우리 장흥군도 이 두지역의 시행착오를 잘 파악한다면 100년 먹거리 성장 동력의 원천을 만들 수 있다 할 것입니다. 또한 구석기 수도 청정장흥을 전국에 알린다면 지역 농수축산물의 판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고 진행해 갈 것입니다.
●황앵커>> 휴가가 피크인데 장흥관광지를 소개해 주시죠.
●안명규기자>> 예로부터 장흥은 문림의향의 고장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상가와 작가를 많이 배출했고 지금도 그 맥은 쭈욱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반봉건 반외세 척양척왜 보국안민의 사상으로 세상을 바꾸자했던 동학전쟁 마지막 전투지인 석대들이 자리하고 기념관도 훌륭하게 지어져 있어서 관람하시면 역사의 현장을 보실 수 있습니다. 또한 1909년 제국주의 침략 원흉 이등박문을 처단하고 동양평화를 외친 안중근의사 사당 해동사도 자리합니다. 1급 전범 기시노부스케의 외손자, 정한론의 창시자 요시다쇼인을 가장 존경한다는 아베신조의 경제침탈과 대동아 공영권을 다시 시도하는 헛된 꿈을 분쇄하기 위해서라도 석대뜰과 해동사 방문을 권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2만2천년전 구석기인들은 한반도 가장 남녘인 장흥을 왜 살림터로 삼았을까요? 장흥은 그들이 살아가는데 가장 좋은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 아닐까요? 아직도 원시자연을 보존하고 있는 구석기 수도 장흥을 찾아오신다면 여름휴가는 탁월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명규기자>>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구석기 수도 청정장흥에 살고 있는 장흥신문 안명규 기자입니다.
●황앵커>> 신북유적의 발견과 규모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안명규기자>> 신북구석기 유적은 장흥군 장동면 신북 검은둥이 언덕의 국도 2호선 도로공사 중 유물이 쏟아져 나와 도로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2003~2004년에 조선대 이기길 교수팀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고 유물의 중요도에 맞게 2008. 4. 11 전라남도 기념물에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신북유적은 추정면적이 최소 4만여 평에 달하고 우리나라에서 보고된 후기 구석기 유적 중 가장 크고 6천여 평의 발굴에서 3만1천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밀집도 또한 가장 높으며 화덕자리가 6개나 드러나서 후기 구석기인들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할 것입니다. 또한 구석기시대 대규모 살림터가 자리해서 보성강 유역의 85개 유적군의 거점유적지로 볼 수 있다 할 것입니다. 그래서 첫 인사를 구석기 수도 청정장흥이라는 인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황앵커>> 그렇다면 신북 유적의 가치측면에서 말씀해 주시죠.
●안명규기자>> 우리나라 서남부의 젖줄인 보성강 유역에서 발견된 신북 유적은 3가지 중요한 대목이 있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한다.”입니다.
황 앵커께서는 학창시절에 구석기 타제석기, 신석기 마제석기로 배우셨을 텐데요 신북 유적에서 이 정설을 뒤집은 것입니다.
구석기 마제석기인 숫돌칼돌, 갈린돌 등 20여점이 나와 구석기 타제, 신석기 마제의 경계를 무너트려 세계 고고학회의 정설을 다시 정립해서 교과서 수정작업에 나서야 할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둘째, 왕인박사 이전에 이미 일본 열도와의 교류가 입증되었습니다.
한.일 양국은 이미 구석기 시대부터 문화 사회적 교류가 있었는데 신북 유적의 흑요석이 그 사실을 입증한다고 고고학계의 교수들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신북 유적에서는 백두산 직선거리 800km, 일본규슈 400km인데 두 지역의 흑요석이 출토되어 원거리 교류망 이었음을 알 수 있고 귀한 물품을 구하기 위한 구석기인들의 열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셋째, 신북 유적이 발굴된 보성강 유역은 후기 구석기인들의 파라다이스였는데 석기들의 수준이 고려 청자급의 보물들로서 지역민의 자긍심을 북돋는 결정체이며 선조들의 삶을 이해하는 역사문화 교육 컨텐츠의 위대한 유산이라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신북 유적은 세계구석기문화 연구의 산실인 프랑스 베제르 강 유역과 비견되는데요. 베제르강 유역에는 라스코동굴, 크로마뇽 사람 유적 등의 구석기 유적이 즐비해서 전 세계인들과 학자들이 구석기인들의 세계를 연구 탐험하는 별천지로 자리한 지 오랜 일입니다. 그래서 신북 유적을 잘 보존하고 홍보한다면 프랑스 베제르강 유역을 뛰어넘는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손색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황앵커>> 신북구석기 유적의 보존 관리 및 활용 방안은요?
●안명규기자>> 2008년 도 기념물 지정 후 10년 이상을 전남도 기념물에 머물러 있어 아쉬움이 큽니다. 그래서 신북유적보존회와 장흥군이 힘을 모아 국가사적지정 및 선사박물관 건립에 나서고 있습니다. 정종순 군수님과 황주홍의원님을 면담했는데 적극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지표명을 확인했습니다. 경기 연천, 공주 석장리는 국가사적지정 후에 선사박물관 건립과 구석기축제시행으로 지역 이미지 상승과 재정에 많은 도움을 가져와 지역의 성장 동력으로 자리했습니다. 우리 장흥군도 이 두지역의 시행착오를 잘 파악한다면 100년 먹거리 성장 동력의 원천을 만들 수 있다 할 것입니다. 또한 구석기 수도 청정장흥을 전국에 알린다면 지역 농수축산물의 판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고 진행해 갈 것입니다.
●황앵커>> 휴가가 피크인데 장흥관광지를 소개해 주시죠.
●안명규기자>> 예로부터 장흥은 문림의향의 고장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상가와 작가를 많이 배출했고 지금도 그 맥은 쭈욱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반봉건 반외세 척양척왜 보국안민의 사상으로 세상을 바꾸자했던 동학전쟁 마지막 전투지인 석대들이 자리하고 기념관도 훌륭하게 지어져 있어서 관람하시면 역사의 현장을 보실 수 있습니다. 또한 1909년 제국주의 침략 원흉 이등박문을 처단하고 동양평화를 외친 안중근의사 사당 해동사도 자리합니다. 1급 전범 기시노부스케의 외손자, 정한론의 창시자 요시다쇼인을 가장 존경한다는 아베신조의 경제침탈과 대동아 공영권을 다시 시도하는 헛된 꿈을 분쇄하기 위해서라도 석대뜰과 해동사 방문을 권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2만2천년전 구석기인들은 한반도 가장 남녘인 장흥을 왜 살림터로 삼았을까요? 장흥은 그들이 살아가는데 가장 좋은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 아닐까요? 아직도 원시자연을 보존하고 있는 구석기 수도 장흥을 찾아오신다면 여름휴가는 탁월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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